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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실 인사로 망신당한 부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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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대통령이 인사에서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은 충성심이다. 전문성은 그 다음이다. 만일 어떤 사람을 전문가라는 이유만으로 고위직에 앉히면 그는 행정부에 재앙이 될 수도 있다."

부시가 이를 얼마나 참고했는지 모르지만 그의 인사는 모핏의 권고와 일치하는 것이었다. 부시는 요직을 채우면서 '내 사람이냐, 아니냐'를 철저히 따졌다. 백악관은 "충성심과 능력을 함께 갖춘 이들을 기용한다"고 했으나 실상은 달랐다. 경험과 전문지식이 없고 무능하지만 대통령과 가깝기 때문에 '꽃가마'를 탄 이들이 속출했다. 그리고 그들이 재앙을 일으킨 경우도 적지 않았다.

대표적 인물이 마이클 브라운이다. 2005년 8월 초대형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뉴올리언스 등을 덮쳤을 때 연방재난관리청(FEMA)을 책임진 그는 우왕좌왕했다. 카트리나가 상륙한 지 다섯 시간이 지나서야 그는 국토안보부에 구호인력의 파견을 요청했다. 시카고 시 당국이 인력과 물자를 지원하겠다고 하자 트럭 1대만 보내면 된다고 했다. 그런 그를 부시는 "대단한 일(heck of a job)을 하고 있다"며 칭찬했다.

브라운은 재난관리엔 문외한이었다. 변호사인 그의 전문분야는 말(馬)과 관련한 소송 업무였다. 그는 국제아랍말협회 회장직을 수행하다 전혀 다른 세계인 FEMA의 최고 책임자가 됐다. 그건 선거 때 부시를 도운 데 대한 보은 인사였다.

천재지변에 인재(人災)까지 보탠 브라운 때문에 부시는 동네 북처럼 두들겨 맞았다. 그런데도 그는 정실주의(cronyism)를 버리지 않았다. 브라운에 대한 원성이 드높던 2005년 9월 부시는 대담하게도 판사 경험이 없는 여성 해리엇 마이어스 백악관 법률고문을 대법관 후보로 지명했다. 텍사스 마피아의 일원을 챙긴 것이지만 역풍은 상상 이상으로 컸다. 공화당에서도 "몰염치한 인사"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마이어스는 20여 일을 버티다 상원에서 인준 받는 게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고 자진 사퇴했다.

얼마 전엔 브라운이나 마이어스보다 악명이 높은 이가 탄생했다. 앨버토 곤잘러스 법무장관이다. 그는 지난해 말 공화당에 비판적인 연방검사 8명을 해임한 사건과 관련해 뭇매를 맞고 있다. 검사를 해임한 의도에 문제가 있는 데다 "나는 직접 관여하지 않았다"는 그의 주장이 거짓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러니 공화당에서도 경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날로 커지고 있다. 그러나 검사 경험이 없는 곤잘러스를 법무장관에 임명한 부시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있다. 그는 텍사스 주지사 시절부터 자신을 보좌해 온 곤잘러스를 여전히 신임한다고 말했다.

부시는 정실주의를 만끽했다. 하지만 탐닉의 대가는 크다. 부시의 인사에 질리고, 그래서 등을 돌리는 이들이 증가함에 따라 그는 고립무원의 지경에 빠져 들고 있다. 공화당 사정에 밝은 저명한 언론인 로버트 노박은 최근 워싱턴 포스트 등에 '부시는 혼자'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다. 노박은 "지난 50여 년 동안 소속 정당에서 이처럼 소외된 대통령을 본 적이 없다"며 "워터게이트 사건의 리처드 닉슨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고 꼬집었다.

부시 대통령은 지금 험한 꼴을 보고 있다. 그가 뭘 하려 해도 도무지 먹히지 않는다. 의회를 장악한 민주당은 사사건건 제동을 걸고, 공화당의 일부는 방관하거나 일부는 민주당 편에 선다. 되는 일은 없고, 안 되는 일은 천지다. 반풍수(半風水.어설픈 풍수가) 쓰다 집안 망친 꼴과 다를 바 없는 게 오늘의 부시 대통령 처지다.

이상일 워싱턴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