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역할·효용성 변신 서둔다-50돌 맞은 「미국의 소리」방송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미국의 소리」(VOA. Voice of America)방송이 전파를 내보내기 시작한지 24일로 50주년을 맞았다.
라디오가 귀했던 해방이후 60년대까지도 파도소리 비슷한 특이한 소음과 함께 세계의 소식을 전해주는 주요 뉴스 원으로 한국인들에게도 귀에 익었던 이 단파방송이 벌써 반세기의 연륜을 기록한 것이다.
그러나 영광스런 나이테를 자랑할 겨를도 없이 최근 이 방송은 획기적인 변신을 도모하지 않을 수 없는 딱한 형편에 처하게됐다.
냉전시대에 미국의 선전논리에 따라 설립, 지속돼온 체질을 신세계질서 태동과 함께 변화시켜야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있는 것이다.
「미국의 소리」방송이 첫 전파를 탔던 1942년과 지금은 지구촌의 상황이 1백80도 다르다.
당시 세계정세는 불안했으며 방송뉴스 또한 일본군의 태평양지역 공격과 독일군의 러시아침공 등 어두운 것이 주류를 이뤘지만 요즘은 정반대다.
VOA는 미국의 주도로 이뤄진 냉전종식을 보도하면서 스스로 냉전종식을 가능케 한 공산주의붕괴에 기여했음을 자부해 온 것이다.
그러나 최근 이 방송의 역할과 효용성, 그리고 비용소요에 대한회의론이 대두되면서 그 존폐마저 위협받고 있다.
특히 동유럽과 구 소련지역에서 정부통제를 받지 않는 새로운 방송이 가능하게 됨으로써 미국이이 지역에서 VOA방송을 계속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의문이 주로 정계에서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자유경제이상은 반드시 미정부산하기구인 VOA에 의해서만 전파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옳지 않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이 같은 분위기를 인식, 로버트 쿤로드 VOA부국장은 VOA가 프로그램과 전달방법 측면 등에서 변신을 시작했다고 주장하면서 VOA의 새로운 존재이유를 내세우고있다.
그는 매일 매일의 뉴스가 이젠 일반방송으로 충분히 전달되기 때문에 VOA는 해설·분석 그리고 배경설명 등을 강화해 나가고있다고 설명하면서 최근 기획시리즈로 방송된 「실천 민주주의(Democracy in Action)를 예로 들어 『이 프로그램은 새로 민주주의를 시작한 국가를 대상으로 민주주의의 실질적인 정보를 제공해주기 위해 제작됐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VOA는 동유럽지역에 내보내는 기존의 단파방송을 발판으로 고품위 FM방송을 쏴 더 많은 청취자를 확보하려는 노력도 기울이고 있다.
기존 방송국과 연계, 유익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공급한다는 발상이다.
한편으로 주요 방송대상 국가의 비중을 과거 동유럽 및 소련외주에서 중국 및 서남 아시아지역으로 중심을 옮기려는 계획도 갖고있다.
특히 지난 89년6월 배경 천안문사태 이래 미국은 중국본토에 독자적인 뉴스를 좀더 광범위하게 보내야한다는 필요성을 절감해왔다.
이를 위해 대 중국용 「자유아시아 라디오」 등 새 방송국을 살림하느냐, VOA의 출력을 강화하느냐는 선택이 미국내에서 제기됐다.
미 국무부는 선무용방송국을 새로 설립해서 중국정부의 반감을 살 필요가 있느냐고 회의론을 냈고, VOA측은 차라리 그 자금으로 기존 VOA의 출력을 높여 가청 권을 넓히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제안을 냈다.
미국의 국제방송국이사회(BIB)측은 새로 설립될 방송국과 VOA 양쪽 모두에 재정지원을 제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새 방송국과 경쟁을 벌이게 될 것 같은 VOA는 「냉전시대의 유물」이라는 인상을 지우기 힘든 가운데 앞으로 적지 않은 도전을 앞에 놓고 있는 것이다.
「월드 서비스(국제뉴스)」를 송출하는 영국 BBC방송과 마찬가지로 VOA도 정부예산으로 운영되지만 BBC와 달리 VOA는 미 공보 원(USIS)이 편성에까지 참여함으로써 방송내용의 자주성 등 성가에 차이가 있다. 쿤로드씨도 BBC가 뉴스의 신뢰성에서 더 앞선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그것은 몰이해에 따른 잘못된 인식이라고 주장한다. 논설이라면 몰라도 뉴스 방송만큼은 불편 부 당임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오랜 기간 냉전의 한쪽 세력을 대변해왔던 VOA가 냉전소멸후의 세계 신질서에서 오히려 험난해진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해야할 입장이다. <윤재석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