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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FTA 어려운 5가지 이유

중앙일보

입력

일본의 눈빛이 달라졌다. 한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을 대하는 태도가 그렇다. "언제든 한국과 FTA 협상을 재개할 준비가 돼 있다"(3일 시오자키 야스히사 일본 관방장관)는 발언이 단적인 예다.

한미FTA 타결이 'FTA 지각생' 일본의 조바심에 불을 질렀다. 동북아내 입지도 걸린 문제다.

하지만 한일FTA 체결로 가기까지 걸림돌이 적잖다. 집권 자민당내 핵심세력인 이른바 '농수산족'(농어촌 출신 의원들)이 최대 변수다. 우리나라 입장에서 중국, 북한과의 관계도 쉽게 생각할 수 없다.

한일FTA가 단기간내 체결되기 어려운 5가지 이유를 살펴본다.

◆ 일본 정계의 '농수산족'
우리나라가 일본과의 FTA를 추진했던 이유는 농업에 있다. 전세계에서 우리나라 농산물을 대규모로 수입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가 일본이다. 한미FTA 등으로 피해를 본 농민에게 보상할 수 있는 길이 일본과의 FTA다.

문제는 일본이 농수산물 개방을 가장 꺼려한다는 점. 일본은 한일FTA 협상에서 농수산물 분야를 56%만 개방하겠다고 했다. 2004년 11월 협상이 중단된 이유가 여기 있다. "일본이 농산물 시장의 90% 이상을 개방하겠다는 약속을 지켜야 FTA 협상을 재개할 수 있다"는게 정부의 입장이다.

하지만 짧은 시간내 일본이 농업 분야에서 대규모 개방을 약속하기는 쉽지 않다. 손열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는 "일본 집권자민당에 농어촌 출신 의원들을 일컫는 '농수산족'은 일본 정계에서 가장 강력한 비토권을 갖고 있다"며 "한미FTA만으로 이들이 농수산물 시장의 개방을 수용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 손해보는 제조업
반면 제조업 분야에서는 우리나라가 얻을게 별로 없다. 오히려 손해가 불가피하다. 세계 최강의 '제조업' 실력을 가진 일본과 무관세로 맞붙을 경우 무역적자 확대는 불보듯 뻔하다. 일본 재계가 한국과의 FTA 협상 재개를 강하게 요구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대일 무역적자는 253억달러에 달했다. 한일FTA로 양국간 관세·비관세 장벽이 철폐될 경우 대일 무역적자는 최대 64억달러 이상 불어날 것이라는게 산업연구원(KIET)의 추정이다.

이경태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원장은 "제조업 분야에서는 일본과 FTA를 해서 단기적으로 이득볼게 별로 없다"며 "장기적으로 부품소재 분야에서 투자협력 등이 이뤄진 뒤에야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했다.

◆ 베이징의 자존심
중국의 입장도 무시할 수는 없다. "한미FTA는 미국의 '중국 견제용'"이라는게 베이징의 시각이다. 중국은 한미FTA 타결로 한국이 미·일 등 해양세력 쪽으로 한걸음 멀어졌다고 보고 있다.

한국을 중화권으로 다시 끌어오기 위해서는 한중FTA가 불가피할 뿐 아니라 시급하다는게 중국의 판단이다. 이런 마당에 원자바오 중국 총리까지 10일 방한한다. 원 총리는 우리나라 측에 이르면 연내 FTA 협상 개시를 요구할 것으로 알려졌다. 보시라이 중국 상무부장은 "한국과의 FTA라면 눈 감고라도 달려가겠다"고까지 했다.

중국이 이처럼 뜨겁게 매달리는 상황에서 일본과의 FTA부터 덜컥 체결할 경우 외교적으로 중국과의 관계가 악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 원장은 "중국에서 총리까지 와서 요청하는데 일본과 먼저 FTA를 체결할 경우 중국을 자극할 우려가 있다"고 했다.

'동북아 균형자'를 추구한다면 미국 다음에는 중국, 그 이후에 일본을 FTA 상대로 삼는게 바람직하다는 지적이다.

◆ 일본이 보는 개성공단
손 교수는 "개성공단 원산지 문제는 한일FTA 협상에서 딜 브레이커(협상결렬 요인)이다"고 했다.

그 정도로 일본은 북한 문제에 민감하다.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사정권에 들어있는 일본 입장에서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은 미국과도 큰 차이를 보인다. '적성국'에서 만들어진 제품을 어떻게 무관세로 사들일 수 있느냐게 일본 측의 정서다.

한국 입장에서도 개성공단 문제를 한일FTA 협상 테이블에 쉽사리 올리지 못하는 이유다. 그렇다고 개성공단의 정치적, 상징적 의미를 고려할 때 버려둘 수도 없는 노릇. 한일FTA에서도 개성공단이 쟁점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 과거사도 변수
민족감정도 간과할 수 없다. 과거사 문제로 한일 정상회담마저 표류하는 상황에서 한일FTA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기는 쉽지 않다.

민족감정이 협상을 깨는 요인으로 작용하지는 않겠지만, 협상을 장기화시킬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손 교수는 "만약 일본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거나 각료 가운데 하나가 종군 위안부 관련해 또 다시 망언을 할 경우 한일FTA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머니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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