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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전업계 벤츠' 독일 밀레 가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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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독일 서부 귀테슬로에 있는 밀레 공장의 내부 전경.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이 회사 공장 9곳에서 한 해 80만대의 세탁기가 생산된다.

몇년이나마 동업을 해 나가기는 쉽지 않다. 동업의 결과가 순탄하기만 하긴 더욱 쉽지 않다. 독일 서부의 소도시에 이런 회사가 있어 찾아가 봤다. 수도 베를린에서 430㎞ 떨어진 귀테슬로의 명품 가전회사 밀레다. 이 회사는 세탁기.청소기.오븐 같은 생활가전을 만드는 회사다. 단순하지만 세련된 디자인, 20년 넘게 쓰는 내구성으로 이름난 브랜드로, 가전업계의 벤츠 또는 BMW로 불린다. 지난해 매출 25억5000만유로(약3조1400억원)의 70% 실적을 수출에서 올릴 정도로 국제적으로도 인정받는다.

◆4대째 동업 경영=본사 건물 1층 로비에는 두 남자의 흉상이 나란히 서 있다. 1899년 회사를 세운 칼 밀레와 라인하트 진칸이다. 밀레가 크림 분리기에서 착안해 세탁기를 만들고, 진칸이 재정을 맡으며 둘의 동업 체제가 굳어졌다.

이후 밀레는 가족 경영체제를 이어 두 창업자의 후손들이 회사를 경영해 왔다. 지금은 4세대인 마르쿠스 밀레와 라인하트 진칸이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밀레 가문이 51%, 진칸 가문이 49%의 지분을 소유하는 비공개 기업이다. 테오도르 지페르트 홍보 담당자는 "108년간 한 번도 경영권 다툼이 없었다"며 "한 집안의 독주를 막기 위해 한 세대가 지날 때마다 기술.경영 부문을 번갈아 맡아 역할 분담을 철저히 한다"고 설명했다. 후계자는 두 가문에서 후보를 추천한 뒤 이사회가 선발한다. 후보는 다른 회사에서 일해 독자 업무 능력을 입증해야 한다. 같은 세대의 방계 가족도 맡을 수 있다.

1세기 전인 1910년대, 밀레가 만든 세탁기. 나무통에 빨래감과 물을 넣은 뒤 뚜껑의 손잡이를 돌리는 수동 세탁기다.

◆장수 비결은 가족경영=밀레는 연간 5~10%의 안정적인 성장률을 보여 왔다. 회사 관계자는 "전쟁 때를 제외하고는 성장을 멈춘 적이 없다"고 말했다. 밀레의 장수 비결로 게르하르트 포펜보르크 부사장은 '가족 경영'을 꼽았다. 그는 " 발빠른 투자 결정과 장기적 사업 계획이 가능하다는 오너 경영의 장점을 최대한 살렸다"고 설명했다. 단기 실적 또는 외연 확장에 대한 조바심을 떨치고 멀리 보는 경영을 했다는 이야기다. 밀레는 한 우물을 파는 대신 품질을 엄격히 관리하고 연구개발에 막대한 투자를 했다.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고임에도 불구하고 독일 내 생산을 고집하고 있다. 매출 대비 연구개발 투자 비중은 7%(약 1억8000만 유로)에 달한다. 밀레는 1910년대 잠시 자동차에 손을 댔다가 2년 만에 접었다. 그 이유가 독특하다. 포펜보르크 부사장은 "자동차 주문이 밀려들어 공장을 확장해야 했는데 그러려면 돈을 빌려야 했다"며 "무차입 경영의 원칙을 포기할 수 없어 자동차 사업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밀레 제품은 90년에 한국에 수입돼 지난해 150억원어치가 팔렸다.

귀테슬로(독일)=박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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