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 영 수 중심 본고사는 파행 교육 유발|임덕준 <경기도 부천시 남구 송내1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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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내년 말부터 실시되는 새로운 대학 입시 제도의 최종 확정을 앞두고 서울대 등 상위권 대학들은 국·영·수 중심의 본고사로 학생을 선발하려 하고있다. 정말로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발상에 절망스러울 뿐이다.
이제까지 우리의 교육을 파행적으로 몰고 온 결정적 원인이 바로 기계적 학습만을 요구하는 국·영·수 중심의 입시 제도였다는 것을 모르고 하는 것인지 답답하기만 하다.
이제까지는 독서하고 토론하고 실험하는 식으로 공부하면 할수록 대학에 갈 수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었다. 그러다 보니 보충수업·자율학습·과외·학원 수강 등 천문학적 사교육비를 지출하면서까지 파행적인 교육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국·영·수 중심의 본고사는 이러한 왜곡된 현실을 결코 개선시킬 수 없으며 오히려 그것을 강화시킬 것이 분명하다. 심지어 그것은 고교의 내신 평가까지 왜곡시키고 무의미하게 만들 것이다.
그런데 각 대학에서는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국·영·수 중심의 본고사를 감행하려 하는지 모르겠다. 그것으로 득을 볼 사람은 단순한 암기 교육에 잘 적응하는 학생들과 과외교사·학원 등 파행적 교육을 주도해온 사람들이다.
이에 덧붙여 각 대학은 많은 재정과 인력을 동원해야되는 본고사를 꼭 치를 필요가 있는지도 묻고 싶다. 전문 분야를 가르치고 연구하는 대학에서 고교 학습 내용을 올바로 평가하는데는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때문에 교육 선진국 대부분이 본고사를 실시하지 않고 국가나 공신력 있는 교육 평가 전문 기관들이 입시를 관장하고 있는 것이다.
본고사를 꼭 실시하려면 교육부가 원래 의도했던 대로 수학능력시험과 중복되는 국·영·수를 피해 전공 분야의 기초 과목에 한해 보완적으로 실시되어야 한다고 본다. 이러한 의지가 없다면 본고사 위주의 입시 제도는 모처럼 일기 시작한 교육 정상화의 조짐을 무너뜨리는 결과를 초래하게될 것이다. 각 대학은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파행적인 교육으로 인해 무의미하게 고통받고 좌절하고 있는지 심각히 고려해서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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