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인력의 이탈을 막자(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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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공명하고 질서있는 선거로 선거가 경제에 주는 악영향을 최소한으로 줄여야 한다는 다짐을 우리는 연초부터 대통령을 포함한 정부·정치지도자들로부터 수차례 들어왔다. 그리고 그 다짐이 실천으로 옮겨져 가뜩이나 불안한 경제가 정치행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더이상 위축되는 일이 없기를 우리는 고대해 왔다.
그러나 현시점에서 그같은 다짐과 기대가 역시 물거품이 되고말 것이라는 불안감을 지워버리기 어렵다. 그런 조짐들이 선거전 초장부터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상공부는 17일 중소기업의 인력난이 다시 심화되고 있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이같은 현상을 초래한 원인의 하나로 선거영향을 꼽았다. 산업인력이 선거운동원으로 빠져나가고 있다는 원인분석이 그것이다.
작년말에 잠깐 완화되는 기미를 보였던 인력난은 다시 심화되는 추세에 있다는 것이다.
상공부 조사에서는 중소기업 인력난에 미친 선거의 영향이 얼마만큼 큰것인가는 밝혀지지 않고 있으나 이것은 우리가 우려해온 선거의 경제적 파급영향에 대한 첫번째의 구체적 사례라는 점에서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
기존정당과 신규정당들이 전국에서 연일 개최하는 지구당대회를 비롯,각종 정치행사에 주최측은 거의 예외없이 한명이라도 더 많은 당원(?)을 동원하는데 혈안이 돼 있고 대형호화판 회의에 선물·향응제공까지 거침없이 자행되고 있어 직업안정도와 임금수준이 낮은 영세기업들의 근로자들이 선거판 행사장에 동원될 개연성은 매우 큰 것이 현실이다.
더구나 급증한 정당수에 비례하여 늘어난 후보자의 수는 자연히 선거운동원의 수요를 대폭 증가시켰으며,선거운동인력의 구성이 청년층 중심으로 돼있는 사실까지를 감안하면 정치권의 막강한 인력흡인력 앞에서 영세기업이 사내의 청년근로자들을 지키기는 어려울 것이 뻔하다.
아직 선거일자도 정해지지 않은 단계에서 산업인력의 이탈이 시작된 것이 사실이라면 선거유세의 청중동원경쟁이 본격화할 무렵에 더 많은 중소기업에서 더 많은 인력이 빠져나가리라는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선거전이 벌써부터 과열·혼탁·불법으로 얼룩지고 있는데도 이를 단속하고 과열분위기를 진정시키기 위한 적극적이고도 신속한 대응조치가 없는 것을 보면 선거로 인한 산업활동의 피해는 앞으로 더욱 커질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젊은 운동원의 확충은 결국 국민경제의 당면과제인 제조업 경쟁력강화에 큰 타격을 주게된다는 것을 정치권은 명심해야 한다.
민주정치의 주요행사인 총선거에 일정한 양의 돈과 사람이 투입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하더라도 한푼의 돈과 한사람의 인력이라도 아껴야 한다는 철칙은 선거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더구나 오늘의 경제현실은 지푸라기 하나라도 낭비할 여유가 없을 정도로 각박하다. 선거판의 무절제와 낭비가 흥청망청 써도 좋다는 착각을 다시금 전체사회에 불러 일으키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거듭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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