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로만 끝나선 안될 평양회담(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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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평양의 6차 고위급회담을 계기로 남북한 관계는 적어도 문서상으로는 희망찬 시대로 접어든다.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와 「비핵화 공동선언」이 발효됨으로써 평화스러운 분위기에서 민족화합과 통일을 기대할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된 것이다.
반세기 가까이 대립과 반목속에 한시도 전쟁의 불안을 떨치지 못하고 살아왔던 우리로서는 축제라도 벌일만한 일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남한 쪽에서는 이 문서의 발효를 앞두고 그러한 축하분위기가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남북한 사이의 이 귀중하고도 역사적인 협약들이 순조롭게 이행되고 실천될 것인지 확신하지 못하는 탓이다. 당초 합의서와 비핵 공동선언을 채택하며 북한측이 묵시적으로 약속했던 것과는 다른 태도를 보인데서 오는 의구심이다.
북한에 대해 의혹을 갖게 하는 단적인 예가 핵사찰과 관련된 문제들이다.
비핵선언 협상에 참여했던 우리쪽 대표에 따르면 북한측은 핵안전 협정서명과 비준은 6차 고위급회담에 지장이 없도록 매듭짓겠다는 약속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왔었다.
그러나 북한은 핵사찰 시기를 늦추려는 의도를 여러 경로를 통해 보이고 있다. 안전협정의 비준에는 수개월이 걸릴것이라고 말하고 남북한의 조속한 시범사찰을 회피함으로써 북한의 신뢰성에 의문을 갖도록 하고 있다.
우려할 만한 점들은 그뿐 아니다. 이번 6차 고위급회담을 앞두고 합의서와 비핵공동선언의 구체적 실천방안을 논의하기위한 판문점의 실무접촉에서 북한측은 합의서내용을 축소해석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남한은 명실상부한 교류·협력을 통한 남북의 이해와 화합을 지향하는 것으로 해석하는데 반해 북한은 우선 내부의 체제를 합리화하고 강화하기 위한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인상을 강하게 주고 있다.
북한의 그러한 의도는 이번 고위급회담의 일정을 준비하는 태도에서도 엿볼 수 있다. 구체적인 실천문제를 논의할 시간 보다는 비준서 교환과 발효에 따른 축하행사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는 것이다.
합의서와 공동선언을 김일성·김정일체제의 업적으로 돌려 임박한 세습체제 안정에 활용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그러나 이들 남북한간의 협약은 어느 특정인이 업적을 자랑하며 정치적으로 활용하려고 만든 것은 아니다.
북한이 합의서를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는 채택이후 끊이지 않고 있는 남한에 대한 비방·중상에도 알 수 있다. 발효는 되지 않았더라도 합의서 정신을 진정으로 존중한다면 당연히 그쳤어야 될 일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번 6차회담이 북한이 의도하는 것처럼 단순히 합의서 발효만을 축하하는 행사로 끝나지 않기를 기대한다. 핵사찰문제에 대해 실질적인 논의를 하고 공동 실무위원회 구성등에 관한 진전이 있어야 한다.
그러한 진전이 있어야만 이번 평양고위급회담은 귀중하고도 역사적인 행사로서 민족사에 기록될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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