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책갈피] 크~ 독하다 아프리카 술집 주정뱅이의 풍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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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아프리카 술집, 외상은 어림없지
알랭 마방쿠 지음, 이세진 옮김, 랜덤하우스, 248쪽, 9000원

술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작품을 건성으로 봐 넘길 수 없으리라. 아프리카 콩고에 24시간 연중무휴로 문을 여는 술집 '외상은 어림없지'의 등장은 큰 사건이었다. 일요일 신도가 줄었다며 교회 사람들이 '성전(聖戰)'을 선언하고, 알코올에서 코카콜라 라이트 따위로 개종한 이들의 공격도 이어졌다. 그러나 술집 주인 '고집쟁이 달팽이'는 그곳에선 "어머니.누이.이모.고모의 은밀한 그곳을 모욕하는 것보다 더 심한 욕"인 '자본주의자'라는 평판을 듣고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전직 교사였던 붙박이 손님 '깨진 술잔'에게 노트를 한 권 주고 술집의 역사를 기록하라고 한다.

그 노트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면면이 가관이다. '팸퍼스 기저귀 사나이'는 젊은 여자를 찾아 사창가에 드나들다 아내에게 쫓겨나고, 딸을 추행했다는 누명을 써 재판도 못 받고 감옥살이를 했다고 주장한다. 그가 한 짓을 응징한다며 간수부터 죄수까지 엉덩이를 붙잡고 '뒷골목 횡단(노벨 문학상 수상작가 V S 나이폴의 소설 제목)'을 가한 결과, 기저귀를 찬 엉덩이에 파리떼를 몰고 다니게 됐다나. 흑인인데도 경제력이 있어 용케 백인 여성과 결혼했던 '인쇄공'은 아내가 자신의 배다른 아들과 붙어먹는 장면을 목격하고도 오히려 정신이상자로 몰렸다고 하소연한다. 억울하고 슬픈 이야기지만 듣는 사람의 배를 잡게 하는 블랙코미디의 진수랄까. 그러나 이 낯선 소설을 대표하는 인생으론 작중 화자인 '깨진 술잔'이 그중 최고다.

"마누라와 술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던 것이다, 실로 획기적인 선택이었으니 나는 그때 술을 택했다"

아직 선생이었을 때, 그는 술을 마신 날이면 늘 수업에 늦게 들어가고, 해부학 시간에 아이들에게 엉덩이를 보여주었으며, 교실 한구석에 오줌을 갈기기도 했다. "단순하고 별것 아닌 기행"을 문제삼은 고지식한 도지사를 만나 학교에서 쫓겨나고, "악마 같은 계집"인 마누라에게도 버림받은 그날부터 '외상은 어림없지'의 붙박이가 됐다. 늙고 지저분하다며 창녀에게도 외면받자 "(예전에는 정어리 통조림만 주고도 멋진 밤을 보낼 수 있었는데) 복지 국가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고 탄식하는 못 말리는 주정뱅이. 그러나 그 펜 끝에서 쏟아져나오는 황당하기 그지없는 인생살이에는 수준높은 유머와 풍자가 넘실댄다. 늙은 주정뱅이의 머릿속을 리얼하게 펼쳐낸 작가의 나이는 겨우 마흔한 살. 전세계에서 삶의 질 최하위 도시에 속한다는 콩고 브라자빌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주목받는 젊은 작가다. 수많은 문학 작품의 제목, 유명한 대사나 시구들을 기가 막힌 타이밍에 인용하면서 자신의 문학적 편력을 내보인다. 소설엔 마침표.물음표.느낌표는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오로지 쉼표로만 가득하다. 하지만 마침표 따위의 부재는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그의 입담은 흡인력이 있다.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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