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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책읽기Review] 소설가들 가슴 적신 '영혼의 단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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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내 영혼이
한 뼘 더 자라던 날
김훈 외 지음, 엠블라, 232쪽, 9800원

대관령 아랫마을에서 강릉 시내 중학교까지 산길 20리를 걸어다니던 어린 시절, 그는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학교를 빼먹었다. 보다 못한 어머니는 지게 작대기를 들고 앞장섰다. 아들을 겁주려는 몽둥이가 아니었다. 어머니는 아들의 앞에 서서 작대기로 수풀의 이슬을 떨어내고, 그 물방울을 온몸으로 받아냈다. 이슬이 모여 아들의 마음속에 긴 강을 하나 만들었다. 이제는 딱 그만한 나이의 아들을 둔 소설가 이순원은 말한다. "아들아. 길은 그 자체로 인생이란다. 그리고 그것을 걷는 것이 곧 우리의 삶이란다."

김훈은 "불모한 시대의 황무지에 인간의 울분과 열정을 뿌리고" 간 아버지를 추억한다. 평생 집 밖을 겉돌던 남편과 네 딸에, 계집애만 낳았다며 평생을 구박하다 치매 걸린 시어머니까지 돌보다 이제는 "아픈 허리를 부여잡고 지금은 그녀의 아이들이 낳은 아이들을 돌보고" 있는 어머니.

소설가 김이은은 어머니에게 '말하는 밥솥'을 사드리고는 "말하는 밥솥 따위는 그녀가 살아온 생에 대한 어떤 보상도 되지 않을 테지요"라며 속으로 눈물을 흘린다. 세상을 살아오다 어느덧 잊어버린, 영혼을 한 뼘 더 자라게 했던 그런 일들이 먼지 폴폴 쌓인 기억의 저장고에서 잠들어있는 건 아닐까. 김훈.신경숙.구효서.전혜성.정미경.이승우. 등 28명의 소설가들이 펼쳐놓는 아픈, 때론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기억의 편린을 건드린다.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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