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일씨도 「정치적」 출국인가(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권정달 전 민정당 사무총장에 이어 14대총선 출마를 준비중이던 코미디언 이주일씨가 돌연 출국한 것은 여러가지 면에서 의혹을 사기에 충분하다. 아직은 본인들이 입을 다물고 있어 이들이 순전히 정치적 이유때문에 도피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울지 모른다.
그러나 이들이 출국에 앞서 보여주었던 왕성한 출마의욕과 측근·주변을 통해 흘러나오는 얘기를 종합해 보면 적어도 이들이 자의보다는 타의에 의해 출국했으리라는 짐작이 쉽게 간다.
이씨가 최근 통일국민당의 공천을 받아 구리시에서 득표활동을 벌이고 있던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그가 연예인의 인기에 힘입어 여당후보에게 다소 위협적 존재였던 것 같기도 하다.
국민당 대변인의 설명에 의하면 그는 정치참여로 인해 사업에 막대한 정신적·물질적 피해를 보았으며 사실상 강제출국되었다는 것이다.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믿지 않더라도 이씨가 권력의 압력이 작용해 출마를 포기한 것 같은 인상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또 들리는 바에 의하면 국민당의 창당발기인으로 참여한 몇몇 탤런트들도 프로그램출연 등에서 직업상 불이익이 느껴지는 모양이다.
우리는 이같은 이상풍조가 사실이 아니기를 바란다. 때문에 일시 곡절이 있더라도 이들이 무난히 총선에 출마해 국민의 심판을 받을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마땅하다고 본다. 만약 그렇지 못하고 강압에 의한 이들의 불출마가 기정사실화한다든지 유사한 사태가 속출한다면 우리는 민주화에 대한 심각한 의문과 함께 현 정부의 권력남용,도덕성상실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여당이 힘을 앞세워 특정정당,또는 특정인의 출마여부나 당선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우리 정치의 수치스런 전통이자 극복해야할 과제였다. 6공의 노태우정부는 바로 이런 짓을 하지않겠다는 것을 대국민공약 제1조로 내세워 출범했다.
사실 6공정부는 그동안 전 정권들이 저지른 비민주적 사례들을 많이 개선했고 민주화에 관한한 국민들이 피부로 느낄 정도의 진전을 이룩한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유독 이번 총선에서 정치에 공작적 개입을 재개한다면 지금까지의 민주화노력에 적지않은 흠집을 내게 될 것이다.
3당통합으로 과거의 일여다야구도가 깨지고 투표내용면에서 다여일야가 될 가능성이 큰 상황의 변화를 전혀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유력한 친여성후보를 인위적으로 제거,또는 위축시켜 민자당의 승리를 확보하겠다는 자유당식 발상은 높아진 민도와 국민정서를 얕잡아보는 것이나 진배없다.
민자당은 최근 다시 3당통합이 구국의 조치였고,그로 인해 우리사회가 안정을 되찾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같은 확신이 있다면 남을 변칙적으로 눌러 이길 생각보다 자신의 장처를 십분 살려 승리를 확보하는 것이 훨씬 떳떳한 길이다.
굳이 위협적인 인사를 등뒤에서 탄압하지 않더라도 여당은 조직·자금·공약 등에서 많은 프리미엄을 갖고 있으며 불공정한줄 알면서도 사회통념이 허용하는 범위가 꽤 넓지 않은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