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 히말라야 탐사 #8신] 얄룽창포는 히말라야의 동진을 막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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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히말라야는 파키스탄의 펀잡 히말라야(Punjab Himalaya)의 낭가파르바트(8125m)에서 시작 해 파키스탄, 네팔, 부탄을 거쳐 장장 2000여km을 달려 티베트로 들어선다. 히말라야의 지역구분은 일반적으로 동쪽으로부터 파키스탄의 펀잡 히말라야를 시작으로 인도의 가르왈 히말라야. 네팔 히말라야, 시킴 히말라야, 부탄 히말라야, 앗삼 히말라야의 6지역으로 구분한다. 남체바르와(南迦巴瓦峰, 7782m 또는 7756m)는 히말라야산맥의 서쪽 끝 앗삼 히말라야 중에서도 최동단에 위치한다. 탐사대는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도대체 왜? 히말라야산맥은 남체바르와에서 끝나는 걸까?’ ‘왜? 동쪽으로 더 이상 흘러가지 못 할까?’ 이런 의문을 안고 탐사대는 3월20일(화) 동부 티베트의 관문 도시인 빠이(八一, 3000m)를 출발해 히말라야의 서쪽 끝으로 탐사의 시위를 당겼다.

동부 티베트의 관문도시 빠이에서 만난 티베티안의 집공사가 한창이다. [사진=신준식·스즈키 히로코]

빠이를 출발 한 버스는 그간의 기다림을 보상하듯 비교적 푸른 하늘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하지만 이곳의 날씨는 언제 바뀔지 모를 정도로 변덕이 심해 멀쩡한 하늘을 보고 또 처다 본다. 탐사를 시작 할 때와 비교하면 모두 검게 그을린 수척해진 얼굴 그리고 한 달간 입에 맞지 않는 기름진 중국음식등으로 인해 지쳐가고 있었다. 말수가 적어지고 조그만 일에도 민감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산에서 바다를 그리워하지 않는다.’는 말처럼 지금은 모든 걸 차지(遮止)하고 탐사에 전력을 기울일 때다. 여럿의 군부대를 지나 차는 거친 비포장도로를 정신없이 달린다. 앞으로 덜컹이며 100km는 더 가야 남체바르와의 코앞에 설 수 있다. 우측으로 앗삼 히말라야의 5000 ~ 6000m급 설산들이 능선너머 고개를 든다. 세 시간을 달리자 베첸(派鎭)에 도착했다.

베첸 마을의 전경. 봄이 오기 시작했다. [사진=신준식·스즈키 히로코]

멀리 ‘하늘을 향한 검(劍)’이란 티베트 뜻을 담고 있는 남체바르와 남벽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찔했다. 말 그대로 거대한 검이 하늘에 닿을 듯 날카롭게 솟아있었다. 대산맥 히말라야가 부탄의 북부를 거쳐 티베트 라사(Lhasa)의 남쪽을 지나 대장정의 끝을 준비하는 곳이다.

이렇듯 히말라야산맥이 파키스탄으로부터 숨 가쁘게 달려온 2500km 대장정의 끝을 이곳에서 맞이하는 것은 다름 아닌, 티베트의 ‘성스러운 호수’ 마나사로바((Mapam Ymcho, 절대 공격하지 않는다는 티베트 뜻)에서 기원한 얄룽창포강(雅魯藏布江)이 히말라야의 동진을 막기 때문이다. 얄룽창포강은 티베트서부의 마니사로바호수에서 시작해 히말라야산맥과 같이 서에서 동으로 티베트를 관통하며 흘러 인도 대륙으로 급선회(急旋回)를 준비한다. ‘얄룽창포 빅 턴(big turn)'이 시작되는 곳에 남체바르와가 서있다. 히말라야 산맥의 끝 남체바르와의 사방이 알룽창포강으로 막힌 것이다. ‘산맥이 강을 건널 수 없다.’는 의견과 ‘맥만 같이하면 된다.’는 지리학적 의견들 중 히말라야의 동쪽 끝은 아마도 전(前)자의 의견이 다수의 의견인 것 같다. 하지만 또 하나의 의문은 남체바르와 바로 북단에 위치한 겔라페리(Gyalna Bairi, 7294m)다. 이 산은 남체바르와의 바로 코앞에 위치한다. 하지만 얄룽창포를 건너있다. 이 산을 히말라야로 보아야 할지 아니면 히말라야 바로 너머에 있는 고이칼라 리지유(Goikarla Rigyu)산맥의 동쪽 끝인지 아니면 독립봉인지가 다시 우리의 과제로 떠올랐다. 아무리 지도를 보고 또 봐도 쉽게 결론 내릴 수 없었다.

베첸을 지나자 남체바르와 남벽은 더욱더 거대한 덩치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1992년 일본∙ 중국 합동대는 이 산의 초등을 기록한다. 1991년 눈사태로 일본 대원 한명이 사망하는 사건이후 와신상담(臥薪嘗膽) 초등을 기록한 것이다. 당시 이 등반대의 목표는 독립된 미등봉으로 최고봉이었던 이산의 초등이었다. 하지만 이 원정대는 남체바르와 능선으로 연결된 다른 봉우리인 나이븐 피크를 통해 이 산의 정상에 섰다. 다시 말해 아직까지 남벽은 미등의 벽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여러 번 해외원정등반을 다녀온 필자의 눈에 표고차 3000m 수직의 남체바르와 남벽은 지구상에서 가장 어려운 벽중의 하나로 손색이 없었다.

얄룽창포의 급선회가 시작되었다. 이제 이강은 인도로 흘러 부라마투라강이 된다. [사진=신준식·스즈키 히로코]

잠시지만 필자는 등반가의 눈으로 이벽을 보며 등반의 가치(價値)를 생각해봤다. 최근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Everest, 8850m)는 무수한 상업 원정대로 넘쳐난다. 돈을 주고 고용한 셀파의 도움으로 공격캠프를 만들고 그들이 설치한 고정 밧줄을 이용해 정상을 돈으로 사는 행태의 등반이 만연되고 있다. 무시무시한 남체바르와 남벽을 보며 저 어렵고 위험한 벽으로 향할 수 있는 용기와 순수성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도전정신이 아닌가 하는 짧은 생각이 스쳐간다. 우리가 잊고 지내던 ‘불확실성에 대한 도전.’은 이미 우리의 지난시절 경험 안에 있는지 모를 일이다.

오후가 되자 얄룽창포강은 회색빛 하늘은 담아내기 시작한다. 바람도 강해졌다. 서둘러 빠이로 되돌아 갈 시간이다.
“정말 운이 좋았습니다.”
“나도 남체바르와를 이렇게 깨끗이 보기는 처음 이예요.”
티베트 운전사는 악천후로 인해 거의 구름에 쌓여있는 이 산이 우리에게 그 날카로운 얼굴을 열었다며 너스레를 떤다.

히말라야의 동쪽 끝남체바르와 남벽의 전경 우측의 뾰족한 봉. [사진=신준식·스즈키 히로코]

푸른 옥(玉)빛을 닮은 얄룽창포강의 거대한 물줄기는 이제 인도대륙으로 향한다. 히말라야의 하얀 산정의 눈 녹은 물도 얄룽창포의 푸른색을 빌려 인도로 떠난다. 거대한 히말라야 산맥도 그들의 안식처 얄룽창포에서 다시 수증기가 되고 눈이 되어 어쩌면 다시 히말라야로 돌아갈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히말라야의 끝은 이곳에서 맺는다.

이제 탐사대는 일정의 반환점에 섰다. 우리는 이제 니엔칭탕굴라산맥(念靑唐古拉山脈)의 중심에 있는 이공초(易貢措) 주위 탐사에 나선다. 조심스럽지만 한국인으로는 최초의 탐사가 될 것이다. 미지의 대상지에대한 설렘을 안고 우리는 3월22일(목) 빠이 동쪽의 작은 마을인 통마이(2110m)로 향했다.

글=임성묵(월간 사람과 산)
사진=신준식·스즈키 히로코

[관련화보]트랜스 히말라야 ⑧-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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