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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과제 내팽개친 국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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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뒤를 보십시오. 이 표결을 지켜보기 위해 어르신들이 와 계십니다."

2일 국회 본회의장. 국민연금법 개정안 관련 찬성 토론에 나선 강기정 열린우리당 의원은 본회의장 방청석에 노인단체 대표들이 와 있다는 점을 의원들에게 상기시켰다. 뒤이어 나온 고경화 의원 역시 한나라당 안이 노인들에게 더 많은 혜택을 주는 안이라며 지지를 호소했다.

이날 국회는 노인에게 생색을 낼 수 있는 기초노령연금법 제정안을 의결했다. 그러나 정작 시급한 국민연금법 개정안은 부결됐다. 국민연금 재정을 튼실하게 하는 것을 전제로 기초노령연금을 도입하려는 것이었는데, 국회는 '패키지'인 2개의 법안 중 입맛에 맞는 하나만 쏙 빼 의결했다. 국회가 국가적 과제를 내팽개친 이후 이틀 동안도 연금부채는 매일 800억원씩 쌓여가고 있다. 또 기초노령연금만 덜렁 통과시키는 바람에 내년에만 2조5000억원이 필요하게 됐다. 모두 국민 세금이다.

국민연금법 개정안에는 먼 미래가 아니라 당장 국민에게 이득이 되는 부분이 많았다. 군 복무 기간 일부를 국민연금 가입 기간으로 인정해 주거나 자녀를 출산하면 연금 혜택을 늘려주는 제도 등이다.

정부도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유시민 복지부 장관은 2월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어르신들이 내년부터는 지원을 좀 받는구나 생각하고 계신데 (국회 통과가 안 되면) 그게 어렵게 된다. 그 책임은 전적으로 한나라당에 있다"고 말했다. 연금 개혁을 위해 '노인 혜택'을 앞세워 야당을 압박한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노인 계층에 득이 되느냐'는 잣대로만 보면 수백조원을 들여 노인 부부에게 월 70만원씩을 주자던 한나라당의 애초 제안이 제일 낫다. 참여연대는 "정부와 정치권의 무책임이 빚어낸 개혁 무산"이라고 평가했다.

다행히 정부와 여야 모두가 연금 개혁을 재추진할 것이라고 한다. 4일 한나라당 확대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이해봉 의원은 "인기 영합주의였다"고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정부와 국회가 이런 자세로 머리를 맞대고 개혁안을 조속히 만들기를 기대한다.

김영훈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