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하녀들』|인간의 악을 찬미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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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악의 미를 찾는 사타니즘(Satanism:악마주의)유의연극 2편이 무대화되고 있다. 악의 찬미는 어느 사회의 상식에나 맞지 않는 얘기다. 하지만 악은 선이 있는 인간사회 어느 곳에나 엄연히 존재해 왔기에 인간본성의 근원을 파헤치고자 하는 예술가들은 악에 주목해 왔다. 착한 것만이 아름답다는 기존관념에 대한 반발이다.
극단민중이 공연중인『위험한 관계』(3월15일까지 현대예술극장)와 극단 산울림이 13일 선보일『하녀들』(3월 8일까지 산울림소극장)이 이 같은 계열의 작품이다.
『하녀들』은 사르트르가「악의성자」라고 불렀던 프랑스 작가 장주네의 대표작이기에 사타니즘적 경향을 담보한 작품이다. 흔히「죽음의 무도회」라는 별칭이 따라다닌다. 어둡고 차갑고 섬뜩한 죽음이 밝고 화려한 무도회와 같이 표현된다. 일반의 상식과 맞지 않는 내용을 부조리극형식으로 만들어 더욱 실험적이며 도전적인 작품이다.
부조리극이기에 다소 난해한 내용을 알기 외해서는 작가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주네는 한마디로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았기에 세상을 저주한 천재다. 사생아로 태어나 버러진 그는 시골농부에게 위탁 양육되면서 10세 때부터 도둑질을 시작한다. 소년원을 일찌감치 드나들기 시작한 주네의 범죄행각은 점점 심각해지며 그의 천재성은 악의 이론을 완성해간다. 선과 마찬가지로 악의 세계가 존재하며 그곳에도 아름다움과 인간다움이 있기에 주네는 모든사람이 외면하는 악의 세계를 표현하고자한다.
『도둑일기』라는 자전적 소설로 우리에게 알려진 그가 유명해진 것은 사르트르가 그의 삶을 실존철학적으로 풀이한 평전을 쓰고부터다. 그의 천재성이 드러나기 시작했으며 그는 종신형을 사면 받게 된다.
『하녀들』은 하녀가 여주인을 독살하려다 실패하자 스스로 연극을 꾸며 극중 여주인이 돼 독배를 들이킨다는 충격적인 내용이다. 부조리극이 흔히 그렇듯이 세계 곳곳에서 각각 다르게 해석되면서 계속 공연되고 있는 작품이다. 여성연극을 개척해온 극단산울림이 실험적인 작품으로 공연영역을 넓히기 위해 마련했다. 젊은 연출가 이성열씨의 데뷔작으로 젊은 배우 노미영·천정명·홍성경 등이 출연한다.
극단 민중의『위험한 관계』는 악을 아름답게 표현했다는 점에서 같은 부류로 주목된다. 프랑스혁명기를 살았던 귀족 라클로의 소설을 각색한 작품으로 상류사회의부도덕을 풍자한 희극이다. 부도덕한 인물의 겉 다르고 속 다른 속물근성을 품자하다가 결국은 그들도 회개한다는 교훈적인 메시지를 담고있지만 연출은 교훈적 피날레를 생략함으로써 악에 대한 가치평가를 객석에 맡기고 있다.
연출가 정진수씨는『악을 노골적으로 악하게 그리는 것은 가장 치졸한 수법이다. 연극은 국민학교 도덕수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악을 최대한 아름답고 매력적으로 꾸몄다』고 연출의도를 밝힌다. 아름다운 악의 화신으로 김성녀가 열연하며 그녀에게 희생당하는 제물로 곽동철·강지은 등이 공연한다. <오병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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