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시평

'하우스 대령'이야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5면

북한 핵실험 직후 북한 측 연락을 받고 '대통령의 측근'을 보냈다가 바로 접촉을 중단시켰다는 것이 청와대의 해명이지만, 문제의 핵심은 접촉의 강도나 지속 여부가 아니다. 북 핵실험으로 긴장이 고조된 시점에 특사도 아니고 공식 직책도 없는 민간인을 북한이 원하는 인사라는 이유만으로 대북 비선으로 기용한 것이 문제다. 국가 대 국가가 만나는 남북관계의 현실에서 북한이 어떻게 나오든 우리가 국가로서 지켜야 할 격식과 절차가 있다. 공식 라인을 배제하는 '측근 외교'의 속성이 원래 그렇다고 항변할 수도 있겠지만, 대내외적 파장이 엄청난 일에 대통령의 정치적 측근이라는 이유만으로 민간인을 내세운 것은 잘못이다.

측근이라고 나서지 말라는 법은 없다. 대통령제의 역사가 200년이 넘는 미국에는 '공인된 측근'이 많다. 그런데 그들은 권력의 그늘이 사라지면 이슬처럼 증발하는 가신형 측근이 아니다. 선거 전문가든 외교 전문가든 그들은 실무형 전문가다. 부시 대통령의 측근 칼 로브도 그렇지만,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윌슨 대통령의 측근이었던 에드워드 만델 하우스는 대표적 사례다. 군대 근처에도 가본 적 없는 허약 체질이지만 '하우스 대령'이라는 별명으로 더 잘 알려진 그는 은행이자만으로도 평생을 유족하게 지낸 텍사스의 부자 백수였다. 1912년 뉴저지 주지사 윌슨의 대통령 당선을 도와주면서 윌슨의 최측근이 된 그는 아무 직책도 없는 민간인으로서 대서양을 오가면서 제1차 세계대전을 전후한 미국 외교를 사실상 지휘했다. 윌슨 대통령이 백악관의 북쪽 방 두 개를 민간인 하우스에게 6년간이나 숙소로 내준 것은 의리에 죽고 사는 한국 청와대의 주인들도 흉내 내기 힘든 파격이다.

그런데 하우스는 최고권력과의 은밀한 독대나 즐기고 과시하는 봉건적 가신이 아니었다. 대통령의 업무를 실무적으로 처리한 전문가 겸 정책이론가였다. 1910년 익명으로 출간한 하우스의 공상정치소설 '행정관 필립 드루'는 미국의 권력자로 대두한 필립 드루가 사회보장제, 노동자의 경영 참여, 누진세제를 도입하고 지금의 유엔 비슷한 국제안보기구까지 창설한다는 내용인데, 이 정책들은 소설로 끝나지 않고 대부분 30년대 뉴딜 이후 미국 민주당의 정책노선으로 자리 잡았다. 1차 세계대전 직후의 파리강화회의에서 윌슨이 제안한 국제연맹도 그 발상의 지적재산권은 하우스에게 있다. 윌슨과 틀어져 '측근 궤도'에서 이탈한 뒤에도 하우스는 이슬처럼 사라지지 않고 역사에 남았다. 그가 1차 세계대전 이후의 세계질서를 연구하려고 월터 리프먼을 비롯한 150여 명의 학자를 모아 만든 '인콰이어리'라는 연구집단은 결국 외교평의회(Council on Foreign Relations)로 정식 발족했고, 지금까지 미국 외교를 주도하는 막강한 브레인 창고로 활약하고 있다.

우리도 대통령제의 역사가 60년 가까이 되었다. 미국과의 시장통합이라는 모험까지 시도하고 있다. 그렇다면 기존의 '측근' 개념부터 재고해야 한다. 절차와 제도보다는 인간관계로 묶여 권력과 운명을 같이하는 동업자형 측근보다는 외교.경제.교육 등 실무 정책과제를 전향적 시야로 투시할 줄 아는 하우스 대령 같은 실무형 측근들이 활약하는 '측근의 현대화'가 필요한 것이다.

권용립 경성대 교수·정치외교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