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새벽 새소리로 1년 운 점친다|세시풍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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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묵은 것을 털고 새 것을 맞이하는 설날이 3년 전 제 모습을 찾은 후 우리 생활에 더욱 깊숙이 뿌리내린 느낌이다.
이제는 많이 퇴색했지만 설날은 과거 우리 조상들에게는 1년 중 가장 큰 의미를 지니는 날 이었다.
예부터 달의 모양과 동식물·인간생활의 변화가 서로 일치한다는 것을 믿어왔다. 그러므로 달이 약해지면 물리적인 삶이나 한 집단 또는 사회내의 생활이 중지되는 때가 된다.
설날은 달이 극도로 약해져 있는 날로 새로운 해를 맞이하기 위해 몸과 마음을 가다듬는 의식이 따르게 된다. 이런 뜻에서 설날은 신일이라 불리기도 한다.
설날이 언제부터 우리의 명절이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수서』를 비롯한 중국의 사서에는 신라인들이 원일 아침에 서로 하례하며 왕이 잔치를 베풀어 군신을 모아 회연하고 이날일월 신을 배례한다고 기록되어 있다.『고려사』 에도 9대 속절의 하나로 기록되었고, 조선시대에는 4대 명절의 하나로 지켜진 것으로 미뤄 설날은 오랜 역사를 지닌 우리 민족의 명절임에 틀림없다.
달이 약해졌다 다시 강해지는 전환점이라는 의미에서 설날의 행사는 달이 가장 커지는 정월대보름까지 이어지며 과거의 것을 청산한다는 의미에서 하루전인 섣달 그믐날에 시작된다.
섣달그믐날은 동네마다 세배 다니는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이웃어른들을 찾아 한해동안 못다한 도리에 대한 용서를 비는 묵은세배를 올린다. 복스런 새해를 맞기 위한 준비다.
이날 즐겨하는 연날리기도 묵은해의 나쁜 것들을 멀리 떠나보내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밤이 되면 집집마다 구석구석에 불을 켜놓고 자지 않는 풍속도 있어 이를「수세」라 했다. 묵은해지만 지켜보내자는 뜻으로 잠을 자면 눈썹이 센다는 얘기도 전해 내려온다. 밤이 깊어지고 새해가 다가오면 남산 등에서 대포를 쏘아 귀신을 좇는 축귀법을 썼다는 조선시대 기록도 있다.
또 야광이라는 귀신이 어린이 신을 신고 가면 어린이에게 물길한 일이 생긴다 하여 체를 대청에 걸어 둔다. 야광이 와서 체의 구멍을 세어보다가 신 신어보는 것을 잊고 닭이 울면 달아난다고 한다.
설날 날이 밝으면 새 출발하는 의미에서 설빔으로 갈아입고 객지에 나갔다 고향으로 모여든 일가친척들과 함께 어른에게 세배하고 조상에게 차례를 올린다. 새로운 시간을 맞이한 사람들의 의례이며 조상에게는 새로운 시간을 맞이하였음을 알리는 것이기도 하다.
세배를 주고받으며 덕담을 나누는데 손아래사람들은 웃어른에게『오래오래 사십시오.』, 어른들은 아랫사람들에게『아들 낳아라』『복 많이 받아라』등의 얘기를 해준다.
설날 차례는 떡국차례라 하여 떡국을 제수로 올리는 것이 상례다. 떡국은 제수로 사용될 뿐만 아니라 산 사람도 세식으로 반드시 먹어야 되는데 이는 나이와 관련된 종교적인 음식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차례를 지낸 후에는 집안의 남녀노소가 조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음복을 하는데 장만한 여러 가지 음식을 고루고루 맛보아야 다복하다고 한다.
세주는 데우지 않고 마시는데 이는 봄이 가까이 왔음을 뜻한다.
옛날에는 승려들이 이날 북을 지고 거리에 들어와 치며 돌아다니는데 이를 법고라 했다. 떡 하나를 주고 속인의 떡 두 개를 받아갔는데 승려의 떡을 아이에게 먹이면 마마를 넘긴다고 했다.
달이 약해진 탓으로 근신한다는 뜻에서 처음 사흘동안은 가까운 곳에만 세배를 다녔고 거리가 먼 곳의 세배는 보름까지 끝내도 무방했는데 특히 부녀자들은 나들이를 하지 않았다.
설날 아침에는 또 어떤 새소리가 들리 나로 1년의 운수를 점쳤다. 까치의 울음소리는 행운을, 까마귀 소리는 죽음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설날의 행사는 7일의 인일로 이어지는데 사람의 태어남을 축하하며 잡 귀신을 막아 한해의 질병을 예방하고 해충을 구제하는 날로 믿고 있다. 예컨대 경상북도 일원에서는 이날 가족의 나이 수만큼 쌀을 내 떡을 해먹으면 1년 동안 무병하다고 믿었다.
이어 8일 곡식 날에는 풍작을 축원하고 점치는 날로 알려져 있다. 이날 오곡을 볶아 먹으면 그해 곡식이 품성하고 떡을 해먹으면 범에 걸리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었다.
이런 행사를 거치면서 설날은 달이 가장 강하게 되는 정월대보름으로 이어지면서 절정을 이룬다.
잠복·어둠의 시기인 그믐과 초승을 지나 활동과 활력의 시기인 보름의 통합기를 맞는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부스럼 깬다」하여 알밤·호두·은행·콩자반 등을 깨물면서「일년 열두달 동안 무사태평하고 종기나 부스럼이 나지 않게 해주십시오」라고 축원한다.
오곡으로 지은 밥과 함께 김·두부·취나물·콩나물 등을 먹고 소에게 오곡밥과 나물을 먹이는데 소가 나물을 먼저 먹으면 흉년이 들고 오곡밥을 먼저 먹으면 풍년이 든다고 점친다. 연을 띄우기도 하는데 「송액영복」이라고 써서 띄우다가 해질 무렵 연줄을 끊어 액운을 날러 보낸다. 정월대보름을 거치고 나면 완전히 새로운 한해가 시작되는 것이다. <김상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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