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슛~아줌마는 축구여왕

중앙일보

입력


지난달 13일 오전 10시 강서구 화곡동 우장산공원 내 인조잔디축구장.
꽃샘추위가 채 가시지 않아 쌀쌀한 날씨지만 반바지와 유니폼 차림의 선수들이 삼삼오오 모여 몸을 풀고 있다. 잠시 후 경시 시작을 알리는 휘슬이 울리자 선수들은 날쌘 발걸음으로 공을 뒤쫓는다.
"언니~ 이쪽으로 패스!" "ㅇㅇ엄마, 사람 막아!"
축구장이라면 늘 볼 수 있는 광경이지만 오늘은 뭔가 색다르다. 그도 그럴 것이, 선수들을 자세히 살펴보니 고운 화장에 긴 머리를 휘날리는 '아줌마'들이다.
이날 경기를 벌인 주인공은 가정주부들로 구성된 강서구 여성축구단(단장 은택표). 지난 2005년 결성 돼 이제 갓 '축구인생'을 시작한 아줌마 축구단이다.
이들을 이끄는 수장은 젊은 시절 국가대표선수를 거쳐 기업은행팀 감독으로 15년 간 32회나 전국대회를 제패한 최길수(63·화곡5동) 감독. 강서구에서 30여 년을 살아온 최 감독은 은퇴 후 강서구생활체육협의회에서 활동하던 중 지난 2005년 여성축구단을 창단 했다.
최 감독은 "서울시내 다른 구의 여성축구단 활동을 보면서 우리 지역 주부들에게도 축구의 재미와 열정을 알리고 싶었다"며 "한 가정의 살림살이를 책임지는 주부들이 건강해야 가족 전체가 화목할 수 있다는 생각에 여성축구단을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아줌마 축구단이라고 해서 아이들 동네축구 정도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25명의 단원들은 매주 화·목·금요일이면 구장에 모여 2시간씩 훈련과 경기를 치른다. 살을 빼기 위해, 또는 호기심에 시작하면서도 '아줌마가 웬 축구?'라며 고개를 갸웃대던 주부들은 어느새 축구 예찬론을 늘어놓는 '축구광'이 됐다.
처음엔 다이어트를 위해 시작해 창단멤버로 꾸준한 활동을 하고있는 민희옥(34·화곡8동)씨는 "등산을 못했었는데 축구를 시작하곤 폐활량이 좋아져 거뜬히 산에 오른다"며 "몸싸움을 하다보면 여기저기 상처가 생기기도 하지만 중독성이 있는지 계속 공을 차게된다"고 말했다.
이영순(51·등촌3동)씨도 "전에는 3층 계단 오르는데도 몇 번씩 쉬었는데 이제는 뛰어 올라갈 정도"라며 "(축구는)스트레스 풀고 새 친구 사귀고 건강도 챙기게 하는 일석삼조 스포츠"라고 말했다. 축구 덕분에 부부간 금슬도 좋아졌단다. 이 씨는 "예전엔 남편이 축구중계를 보고 있으면 짜증도 내고 채널을 돌려 다투기도 했었다"며 "지금은 함께 경기를 보며 축구에 대한 얘기를 나눌 수 있어 훨씬 사이가 좋아졌다"고 말했다.
강서구 여성축구단은 지난해부터 공식시합에 출전했다. 서울 각 자치구의 여성축구단이 참가한 2006년 서울시장배 대회에서의 성적은 1승 1무 1패. 올해는 좀 더 나은 성적을 내는 것이 단원들의 당면 과제다.
연애순(44·내발산2동)씨는 "눈·비를 맞으며 운동장을 달릴 때면 다른 운동에선 느낄 수 없는 희열마저 느낀다"며 "단원들이 최선을 다해 훈련을 하고 있는 만큼 올해는 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섞인 축구단은 때론 삶의 지혜를 배우는 교육장이 된다. 팀에서 유일한 선수출신인 김숙희(29·화곡동)씨는 결혼 3개월 차의 새색시다. 김씨는 "선배 엄마, 선배 주부들과 어울리다 보니 결혼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많이 배우게 된다"며 "주부들이 즐겁게 공을 차는 모습에서 선수시절과는 다른 '즐기는 축구'를 배울 수 있어 여러모로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강서구 여성축구단과 승부를 겨뤄본 남자팀의 평가는 어떨까.
이날 함께 경기를 벌인 서서울지역 70대 축구동호회 소속 문종희(70·연희동)씨는 "주부들 치고 주력과 순발력은 좋은데 개인기가 부족해 보인다"며 "차츰 실력이 늘고 있는 만큼 꾸준히 노력하면 좋은 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성축구단은 서서울지역 70대 팀과 3개월 째 친선경기를 갖고 있다.
최 감독의 목표는 2년 이내에 팀을 서울시 자치구 여성축구단 중 최고의 자리에 올려놓는 것.
'서울시 제패'를 향한 강서구 아줌마들의 당찬 도전은 오늘도 계속된다.

프리미엄 이경석 기자
사진=프리미엄 이성근 인턴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