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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 (14) 서울 관악갑 열린우리당 이지문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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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14대 총선 당시 현역 장교의 신분으로 군부재자 부정투표를 고발한 이지문(35) 전 중위가 ‘부패청산’을 내걸고 여의도 입성에 도전한다. 이씨는 자신이야말로 “부패정치 청산이란 시대적 과제를 맡을 만한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부패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혐오감이 극에 달했습니다. 그런 만큼 깨끗한 정치인에 대한 기대감도 그 어느 때보다 커 보입니다. 군내 부정선거에 대해 양심선언을 한 후 10년 동안 경실련·참여연대·공선협·흥사단 등 시민단체에서 활동했습니다. 도덕성을 갖춘, 시민단체 출신이라는 점에서 국민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다고 자부합니다.”

그 날의 양심선언은 그가 정치권에 입문하는 계기가 됐다. 그해 총선에서 군 부재자 투표로 뒤져 낙선한 김민석 전 의원이 그에게 함께 일하자고 제안을 했다. 김 전 의원의 추천으로 그는 95년 서울 영등포 지역에서 최연소 시의원에 당선한다. 이후 꼬마민주당·국민신당·한나라당을 전전했다. 짧은 정치 경력에 여러 번 당적을 바꾼 데 대해 그는 곤혹스러워했다.

“정치판에 몸담은 사람으로서 심한 자괴감이 드는 게 사실입니다. 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정당의 이합집산에 제 몸을 내맡긴 셈이니까요. 저의 의지로 당을 옮긴 건 한 번뿐이지만, 어떻게 설명하든 납득하시기 어려울 거로 봅니다. 이 역시 유권자의 심판을 받아야죠. 두 말할 나위없이 정치인은 한 번 선택한 당의 색깔이 평생 자기 색깔인 것이 바람직합니다. 건전한 진보와 건강한 보수가 대결하는 그런 구도, 저 역시 그럴 수 있도록 힘쓰겠습니다.”

2000년 16대 총선과 지난해 보궐선거의 공천 과정에서 그는 계파정치의 폐해를 절실히 맛봤다. 이와 관련해 그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젊은 사람이 무리하게 공천을 받으려 했고, 또 무리하게 정당을 선택했다”고 인정했다. 그는 이번 출마에 대해 “어찌 보면 참 무모할 수도 있는 모험”이라고 털어 놓았다.

▶이지문씨는 “불의 앞에서 정의를 말할 수 있는, 그러나 거친 들판의 작은 풀꽃에도 눈물짓는 그런 사람이고 싶다”고 털어 놓았다. 군부재자 투표 부정을 고발한 그는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젊은이들이 군에 몸담고 있다는 이유로 양심에 저촉되는 투표를 강요 당하는 것을 묵과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한 평범한 ROTC 출신 장교였던 그의 인생은 그 후 크게 바뀌었고, 그 연장선 상에서 민의의 대표자로까지 나서게 됐다. 사진은 지난 1992년 3월 22일 공선협에서 군내 부정선거에 대해 양심선언을 하는 이씨.

내년 총선에서 그는 양심선언을 할 당시의 초심으로 돌아가 유권자들에게 호소할 작정이다. 내부 고발자 보호운동을 펼치고 있는 시민단체 ‘공익의 호루라기를 부는 사람들’의 대표로 활동 중인 것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단체는 그와 같이 양심의 호루라기를 부는 시민들이 더 이상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부패방지법 개정 운동에 적극 나서고 있다. 그는 양심선언 후 구속과 동시에 이등병으로 강등됐었다. 3년에 걸친 재판 끝에 계급을 회복한 그는 현행 부패방지법의 보호 장치가 여전히 미약해 피해자들이 속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제 우리 사회가 부패문제에서 자유로워 지지 못하면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습니다. 당선되면 지금 제가 참여연대에서 추진하고 있는 부패방지법 개정운동에 온 힘을 실을 작정입니다. 각종 정치관련법, 비리 관련법 개정에도 앞장설 작정이구요.”

이씨는 내년에 있을 총선 과정에서도 내부 고발자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돈 받는 유권자들도 처벌 받아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이 생겨날 때만 금권정치가 힘을 잃게 될 거라고 주장했다. 부정선거를 줄이는 해법으로는 ‘선거전담 재판부’의 신설을 제안했다. 특히 선거법 위반 관련 재판은 반 년 안에 끝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의원 출신인 그는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역 의원이 지역 이익의 대변자로 전락할 때 국가적인 차원의 공익이 위협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역구와 관련한 국회의원의 역할은 지방의원들이 제 역할을 다하도록 이들의 권한과 기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제도적 뒷받침을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열린우리당 소속인 이씨는 서울 관악갑에서 예비 경선을 치러야 한다. 그는 한나라당 후보나 민주당 현역 의원보다 경선에서 맞붙을 유기홍 전 개혁당 지구당 위원장을 유력한 경쟁자로 꼽고 있다.

김경혜 월간중앙 정치개혁 포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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