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중 인권보호 국가도 책임”/김근태씨 손배승소 판결의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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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권인숙·박종철에 이어 사법부 의지보여
김근태씨 고문사건과 관련,국가에 대한 손해배상소송에서 원고승소판결을 내린 것은 법원이 수사당국의 불법적인 고문등 가혹행위에 대해 사건당사자의 형사적 책임외에도 국가도 이에 대해 민사적인 책임을 져야한다는 점을 재확인 한 것이다.
특히 고문등 불법행위에 대해 수사관등 사건당사자의 형사처벌과 별도로 국가가 민사적 책임을 져야한다는 점을 강조해 인권유린행위 근절에 대한 국가관리 책임에 대해 거듭 경종을 울렸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이같은 판결은 89년 6월의 권인숙씨 성고문사건과 같은해 11월의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국가의 배상책임을 인정한 것과 같은 맥락으로 국가권력에 의한 가혹행위를 척결해야겠다는 사법부의 일관된 의지를 읽을 수 있다.
85년 9월의 사건발생으로부터 6년 4개월만이지만 88년 12월 고문경찰관들에 대한 재정신청이 받아들여져 재판에 회부됐었기 때문에 이번 판결은 어느정도 예견된 것이었다.
지난해 1월 김씨를 고문한 혐의로 기소된 김수현 경감(59)등 전치안본부 대공수사단 경관 4명에 대해 서울형사지법이 징역 5∼2년씩의 실형을 선고한 것은 사법부가 이들의 불법사실을 인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재판이 6년이나 끈 것은 형사적인 판단이 먼저 마무리되기를 기다렸던 것으로 볼 수 있다.
현재 국가보안법등 위반혐의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수감중인 김씨는 이로써 뒤늦게나마 고문피해에 대해서 물질적인 배상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이번 사건은 고문경찰에 대한 고소사건을 검찰에서부터 무혐의처리한뒤 변호인들이 고법에 낸 재정신청이 받아들여져 재개되는등 우여곡절이 많았으나 재판부는 변호인 접견제한부분만 제외하고 ▲고문등 가혹행위 ▲영장없는 불법감금 ▲고문증거은폐 등의 불법행위에 의한 정신적인 피해에 대해 원고측 주장을 대부분 인정해준 것이 특징.
재판부는 『김씨에 대한 고문 등의 가혹행위가 있었는지가 판단의 관건이었을뿐 고문 및 기타 불법사실이 인정된 이상 김씨가 본 정신적·육체적 피해에 대해 수사기관을 관리하는 국가의 배상책임은 당연한 것』이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위자료부분에 대해서는 『증인들의 증언 등을 면밀히 검토한 결과 김씨가 치안본부에서 조사를 받으면서 물고문,전기고문을 당했다는 사실이 인정되고 이에 대한 정신적 모멸감등 견디기 힘든 정신적 피해가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특히 김씨의 증언에 전적으로 의존한 이번 사건에서 가혹수사의 불법성이 구체적물증이 없는데도 법원에 의해 폭넓게 받아들여졌다는 점은 주목할만 하다.
국가가 이번 판결에 불복,상소할 경우 앞으로도 2심과 대법원의 최종판단이 남아 있기는 하나 권인숙·박종철 사건과 함께 5공시대의 3대 인권사건으로 꼽히는 김근태씨 고문사건이 형사적·민사적으로 일단락됨으로써 5공시절의 주요고문사건에 대한 시비는 대부분 가려진 셈이다.<남정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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