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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령모개 행정(21세기 대비위한 긴급동의/벼랑에 선 교육: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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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춤추는 입시제/「땜질처방」더이상 안된다/해방후 대입 11번·중입 6번이나 바꿔/교육과정·내용도 정권 입맛따라 손질
교육을 흔히 국가 「백년대계」라고 일컫는다.
그러나 우리교육에 관한한 이런 수사는 입에 발린 말로라도 쓸 수가 없다.
정책당국은 필요에 따라 교육제도를 아침에 바꾸고 저녁에 고치는 일을 반복해 왔고 모든 시민들은 그같은 변덕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장기적인 목표나 근본적인 처방없이 정치적 목적과 여론에 따른 땜질식 대응법으로 왜곡되고 시행착오를 거듭해온 우리교육.
해방후 근 반세기동안 11차례나 크게 골격이 바뀐 대학입시제도가 그 대표적인 예다.
대입제도는 국가고사와 대학별고사 사이에서 문제점이 부각될 때마다 극에서 극으로 오락가락하는 양상을 보여왔다. 완전한 국가관리에서 완전한 대학자율까지,또 그 절충식까지 가능한 방법은 모두 시험을 해본 셈이다.
○또다시 개선 논란
해방직후 대학입시는 대학별 고사였다. 당시 대학생에게 병역징집을 보류하는 특혜가 주어지자 부정입학사례가 나타났다.
이에 정부는 53년 대학입학자격고사를 채택하면서 대학별고사를 병행 실시키로 했다. 그러나 금방 또 문제가 발생했다. 53년 12월28일 실시한 연합고사에 응시한 2만9천5백여명중 당초 1만7천명을 합격시킨다는 계획이었던 것이 시행과정에서 방침이 변경돼 합격자가 2만5천명으로 늘어났다. 그런데 불합격자 4천5백여명중에 일부 지도층인사의 자녀가 포함됐다.
이들이 시행과정에 이의를 제기하고 나서 결국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54년 3월 이미 실시한 연합고사를 무효화하는 소동을 불렀다.
대입제도는 다시 대학별고사와 내신성적(30%)으로 변경됐으나 또다시 대학의 자율권은 무분별한 초과모집부조리를 낳았다.
정부는 감독권을 강화하는 대신 62년 대학총정원의 1백%를 국가고사로 뽑고 합격자가 대학을 선택해 본고사를 치르도록하는 대변혁을 시행했으나 미달사태등 부작용으로 2년만에 폐지됐다.
또다시 대학완전자율로 돌아서 68년까지 지속된 대입제도는 청강생등 정원초과모집사태를 재현시켰고 69년에 국가고사인 예비고사제도가 도입돼 80년까지 지속됐으나 5공화국의 등장으로 마감됐다.
과열과외를 가라앉히고 고등학교 교육을 정상화한다는 명분으로 81학년도부터 완전국가고사인 학력고사가 실시됐다. 그러나 극심한 눈치지원이 문제점으로 지적되자 88학년도부터는 선지원 후시험으로 수정됐고 6공화국에 들어서는 대학의 선발권이 강조되면서 94년시행 새 대입제도가 마련됐다.
그러나 이 마저도 이번 후기대입시사태로 국가관리에 대한 불신이 증폭되면서 또다시 개선논의가 일고있는 상황이다.
정권이 바뀌면 제도가 바뀌는 식이다.
또 중학교입시제도는 학교별 고사제(45∼50년)→국가고사제(51∼53년)→무시험전형제(54∼58년)→연합고사제(59∼61년)→국가고사제(62∼63년)→연합고사제(64∼68년)등 여섯차례의 변경끝에 현재의 무시험추첨제가 69년이후 시행되고 있다.
교육제도가 채 정착되기전의 일이기는 하지만 학제도 51년에 현행 6·3·3·4제가 시행되기전에 세번 바뀌었다.
○관료주의의 강화
조령모개는 입시제도뿐만이 아니다.
학교교육의 내용과 방법을 결정하는 교육과정까지 정권의 변동이 있을 때마다 그 성격에 맞춰 개정됐다는 것이 교육계의 지적이다.
5·16 쿠데타로 군사정권이 들어선후 있었던 2차교육과정 개정때 반공도덕 과목이 신설되고 「조국근대화」라는 단어가 교과서 곳곳에 들어갔으며,유신체제때는 3차교육과정을 통해 「한국적 민주주의」「국적있는 교육」이 강조됐다.
5공화국때는 「선진국창조를 위한 의식개혁」이란 조어가 등장했다.
김인회 교수(연세대·교육학)는 『5·16이후 군사문화적인 교육통제를 통해 국민통제가 이어져왔다』며 『교육정책은 조령모개의 이면에 정권세력과 교육관료,이들과 밀착된 교육전문가집단의 이해가 일치하는 관료주의의 강화라는 일관된 방향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5공화국의 졸업정원제는 파행운영끝에 부작용이 부각되자 87년 폐지됐으며 과외금지조치는 공교육의 개선이라는 근본처방없이 강제돼 결국 한낱 한 군사혁명가의 실험으로 끝날 수 밖에 없었다.
○반복된 시행착오
교육문제를 종합적으로 진단하고 대책을 세우지 못한채 문제가 제기된 부분만 땜질식으로 해결하려 했기 때문에 한부분의 해결은 다른 부분의 문제를 불러오는 모순이 우리교육의 고질을 키워왔다.
반복되는 시행착오속에 학생과 학교는 실험대상과 피해자로 떨어졌고 이같은 파행교육이 새로운 문제를 낳지만 좀체 고쳐지지 않는 답답한 상황.
결국 이같은 상황이 「교육민주화운봉」을 불러일으켜 전교조라는 아픈 응어리를 남기기도 했다.
교육제도가 이처럼 갈팡질팡하는 원인은 무엇일까.
김신복 교수(서울대)는 『과거 오랜 권위주의시대에 통치자들이 교육정책을 교육본질의 문제에 접근시키지 못하고 정치적 억압에 의한 국민적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도구로 악용했었다』고 교육의 정치도구화를 지적했다.
김교수는 또 『일반국민들도 누구나 교육에는 나름대로의 의견을 가져 교육정책이 항상 여론의 표적이 되어왔으며 이 때문에 합의가 어렵고 잦은 변화를 보여왔던 것』이라고 풀이했다.
따라서 교육정책이 제자리를 찾기 위해서는 교육문제를 교육적 목표에서 종합적으로 검토하는 근본적인 자세전환이 시급하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그래야만 합의된 정책에 접근할 수 있고 다소 부작용이 발생하더라도 정책이 힘을 얻어 추진될 수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대학입시만 하더라도 근본적으로 수요와 공급의 차이에서 오는 과열경쟁이 가장 큰 문제인만큼 선발방식의 변경만으로 해결할 수는 없으며 비진학자에 대한 대우개선과 실업계 중등교육의 확대라는 처방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 교육계의 일치된 의견이다. 조령모개의 악순환을 끝내는 것이 교육개혁의 출발점이다.<이덕령기자>
◇대입제도의 변천
●연도:45∼53
유형:대학별고사
시행결과:부정입학발생
●연도:54
유형:대입연합고사
내용:국가관리
시행결과:정치적이유로 무효화
●연도:55∼61
유형:대학별고사
내용:입학정원의 10%무시험 전형 90%는 고교내신성적반영
(30%)
시행결과:초과모집등 학사부조리발생
●연도:62∼63
유형:대학입학자격 국가고사
내용:대학총정원의 1백%만 선발해 대학별 응시
시행결과:성적우수자 탈락과 비인기대학·학과 미달사태
●연도:64∼68
유형:대학별고사
시행결과:초과모집
●연도:69∼80
유형:예비고사+대학별고사
시행결과:과열과외,고교교육 정상화저해
●연도:81
유형:예비고사+내신성적
시행결과:대학의 선발기능약화
●연도:82∼87
유형:학력고사
내용:선시험후지원 86,87년 논술고사실시
시행결과:극심한 눈치지원 대학선발기능약화
●연도:88∼93
유형:학력고사
내용:선지원후시험
시행결과:극심한 눈치지원 대학선발기능약화
●연도:94∼
유형:내신+수학능력시험+대학별고사
◎“대학도 자율선발 할 수 있는 능력 기를때”/백명희 교수 이대·교육행정학(전문가 진단)
교육정책 및 제도가 교육발전에 긍정적으로 그리고 적극적으로 수용되고 접목되기 위해 무엇이 문제이며 개선방안은 무엇인가.
그 첫째 문제는 교육정책 및 제도에 대한 불신과 불안정에 있다.
1994년도에 적용될 새 대입제도가 일선교육계에 시달되었을때,이 제도는 교육부장관이 경질되든가 제7공화국이 들어서면 곧 개정하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건국 이래 문교부장관이 34대째이고 대학입시제도가 열한번이나 바뀌었으니 교육계의 비판과 교육제도의 불안정은 충분히 이해된다.
잦은 제도변경과 획일적 강제가 항상 새 교육제도에 대한 불신을 가져왔다. 그 대표적 예가 제5공화국이 7·30교육개혁으로 내놓은 졸업정원제다. 이 제도는 재수생누적과 과열과외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입학정원을 1백30%로 확대하고 대학이 상대적 평가를 하도록 하여 4년간 30%의 학생을 탈락시키라는 제도였다.
이 제도로 인해 캠퍼스는 비정한 관계를 노출시켰고 상대적 성적불량학생과 운동권 학생이 탈락되어 캠퍼스를 떠나게 되자 교육을 정치의 수단으로 이용한다는 비난까지 받게되면서 결국 백지화하기에 이르렀다.
그후 탈락된 학생들은 민주화운동으로 탈락하게 되었음을 지도교수가 보증하게 하여 재입학을 허락하도록 조처함으로써 교육부는 지도교수나 대학의 권위를 실추시켰다.
졸업정원제도­학생탈락­백지화­재입학­교권실추등 일련의 정책과정을 통해 교육계가 입은 상처는 물론 깊으려니와 새로운 정책이나 제도를 수용하는 교육계의 시각이 일단은 피해의식과 불신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둘째는 교육정책 및 제도수립과정에서의 비전문성 내지 졸속성의 문제다.
대개 정책대안은 교육전문가나 대학교수들이 담당하여 만들지만 예산부족,시간적 제약 때문에 광범위한 깊은 연구가 결여되어 있으며 이렇게 만들어진 대안은 그후에 수십명의 각계각층의 자문과 공청회를 거치지만 부분적 수정·보완일뿐 요식행위에 그친다는 느낌마저 든다.
이렇게 만들어진 새 제도에 대해서 교육계는 갑론을박 비판을 가하게 되며 제도 자체에 대한 비전문성과 졸속성을 제기하게 된다.
21세기를 목전에 두고 어느 다른 분야보다 인재양성과 교육발전에 개혁 의지를 발휘해야 할 교육계는 각자가 스스로를 정립하고 미래에 도전할 응집력과 통합적 체제를 구축해야 할 때다.
교육행정 제도가 당리당략이나 정치적 도구로 이용되지 않아야 하며 이를 위해 교육관료는 직업공무원으로서의 공평타당한 직업관을 확립하고 교육발전에 기여할 소신과 전문성을 가져야한다.
한편 현장 학교는 자율할 수 있는 전문적 능력을 배양하고 사회로부터 신뢰와 존경을 받음으로써 교육자 본연의 권위를 회복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모든 여건위에서 교육행정 및 제도가 교육본질 그 자체를 실현하게 될 때 새로운 교육정책 및 제도는 교육계와 일반사회에 수용되며 교육발전에 접목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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