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임금·물가·금리 개입/각계인사들이 보는 시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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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당장은 효과있지만 후유증 크다”/경제의 구조적인 문제부터 손대야/임금 가이드라인 제시안하면 혼란/경제난 극복위해 꼭 필요
경제운용계획을 세우고 난 정부가 임금인상 억제,물가안정,금리인하,과소비억제와 같은 정책목표를 이루기 위해 지도·단속 등의 행정력을 크게 강화하고 있다. 이에 대해 흐트러진 경제질서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긍정적인 시각도 있는 반면,정해진 태두리안에 경제를 우겨 넣으려는 것은 되지도 않을 뿐더러 당장은 보이지 않는 더 큰 부작용만 키울뿐이라는 부정적인 견해도 거세지고 있다. 각계 인사들의 중지를 모아본다.
◇정문찬 서울대교수=금리가 너무 높고 이를 낮추어야 한다는데는 동의한다.
금리자유화를 너무 일찍 시작한 감이 있지만 돌이킬 수 없다면 방법이 문제다.
인사권이나 행정규제로 금리를 낮추려한다면 더 큰 문제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자금의 공급에 비해 초과수요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물가상승을 우려해 통화공급을 묶어놓고 금리를 인하하려 한다면 무리가 따른다.
따라서 자금의 초과수요압력을 완화시켜야만 효율적인 금리인하를 기대할 수 있다.
가령 정부가 증시를 좀더 활성화시켜 직접 금융의 조달폭을 넓히고 외자도입을 자금보다 신축적으로 운용할 경우 통화증가억제선 내에서도 금리의 인하를 유도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IMF등 외국 금융기관 전문가들의 한국금융에 대한 비난에 지나치게 귀를 기울일 필요는 없다.
미국 금융의 잣대로 한국금융을 바라보면 안된다. 일본도 미국적 시각에서는 비효율적인 금융후진국이지만 국민경제적 측면에서는 훨씬 효율적인 면이 많다.
금융의 시장성과 수익성도 중요하지만 필요한 곳에 적절한 금리의 자금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공급하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라고 본다.
◇정주호 대우전자 전무=30분 일 더하기라든가 술집 안가기,또 임금 인상 5%선 억제 등의 정부시책은 이를테면 우리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들을 근본에서부터 풀어나가려는 것이 아니라 문제의 연장선상에서 그 결과만을 다루려는 것과 같다.
기업이나 근로자들부터 앞장서야 하는 일이지만,예컨대 VCR를 포장할때 5㎝위에서 사뿐히 내려놓으라고 되어 있으면 그대로 실행해 야지 20㎝위에서 탁놓는 것과 같은 일을 하지 않도록 서로들 정신자세를 가다듬자는 식의 의식구조 개혁운동이 바로 문제의 근본을 다루는 접근 자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임금인상을 5%이내로 억제하라는 것도 기업으로서는 이제 별로 반갑지 않다. 지금은 5%라는 가이드 라인이 일사불란하게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 임금인상의 최저선,다시 말해 노사간의 협상이 시작되는 출발선이 5%가 되는 시절이라는 것을 정부는 잘 모르는 것 같다.
◇경제부처 모국장=물가든,금리든 기본적으로 시장기능에 의해 결정되도록 해야 장기적인 후유증을 줄일 수 있다. 특히 경기진정을 위해 총수요관리를 한다면서 금리의 하향안정 운운하는 것은 한마디로 모순된 정책이다.
◇금용계 모임원=은행금리를 인위적으로라도 낮추려는 것은 총수요 관리를 통해 적정성장을 꾀하겠다는 것과 상충되는 수단이다.
물가안정을 위해서는 시장·군수에게 개인서비스 요금인상을 통제하라고 하고 있다. 그 수단으로 위생검사나 세무조사도 좋다는 입장이다.
「가시적인 성과」를 위해서는 자율화를 어느 정도 포기하겠다는 최근의 정책흐름은 단기적인 효과는 거둘 수 있을지 모르나 결국엔 무리수로 판정날 가능성이 높다.
◇이정식 노총 정책연구실 연구위원=임금협상은 기본적으로 노사협상에 의해 결정돼야 하고 노사관계의 바탕은 힘의 대등성과 자율이다.
정부가 제시한 임금가이드라인은 이 원칙을 무시한 것이다.
물가억제 목표선이 9%인데 5%의 임금인상을 제시하는 것은 노동자가 모든 경제정책 실패의 책임을 떠안으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임금인상 자제→물가안정→수출경쟁력 회복이라는 소득정책의 논리가 설득되려면 ▲각 경제주체가 고통을 분담하려는 합의 ▲미래의 소득보장에 대한 기대 ▲정당한 분배에 대한 합의와 제도화가 전제돼야 가능한 것인데,예를 들어 노조의 경영참가가 보장되지 않는 상태에서의 정부개입은 강력한 반발에 부닥칠 것이다.
우리는 경제위기의 본질이 자본주의를 떠받치는 두기둥,곧 자본가와 노동자의 의욕상실에 있지 경상수지적자 등의 수치적 성과에 있지 않다고 본다.
천장에 달한 주택가격과 제조업의 인력난을 감안할때 물가상승률에도 못미치는 임금인상을 가지고 제조업으로의 노동력 유인이 가능하겠는가.
▲최경선 대한상의 이사=제조업경쟁력 강화를 위해 인건비를 안정시킬 필요가 있고 경제주체들도 조금씩 자기몫을 양보할때다.
정부가 임금인상 억제를 위해 행정력을 동원하는 것은 아름다운 모습은 아니지만 정부의 가이드라인이 없으면 기업마다 노조의 힘에 따라 임금인상률에 큰 차이가 나 결국에는 임금이 높게 오르고 임금안정책이 실패할 우려가 있다.
◇이한구 대우경제연구소장=뒤늦게 경제를 수습하려고 나선 정부가 빨리 효과를 낼 수 있는 것부터 찾아서 하려는 노력을 일단 평가해주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너무 행정력에 의존하는 것은 시대에 맞지 않고 효과적도 일시적일 수 밖에 없으므로 정부가 경제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이는데서 그치고 나머지는 경제원리에 맡겨야 할 것이다.
우리 경제가 앞으로 제대로 가려면 무엇보다도 과세행정이 제대로 이뤄져야 하며 경제규모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대해진 서비스업을 억제하는 일관성있는 정책이 추진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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