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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경찰서에 엽기 범죄 몰리는 이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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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3일 오전 9시30분. 경기도 안산시 단원경찰서 전화벨이 울렸다. 아파트 단지 화단에서 여자 시체가 발견됐다는 보고였다. 이희천 경위(46)를 중심으로 수사팀이 즉각 꾸려졌다. 연초 벌어진 중국인 토막 살인 사건을 해결한지 불과 한달째. 특진 기쁨을 누릴 새도 없이 다시 출동 신호다.

◇잇따라 터진 엽기 범죄=지난해말 여중생 폭행 동영상 사건, 올 1월 중국인 토막 살해 유기 사건, 지난 24일 고교 3학년생 3명의 전입생 집단 폭행 사망 사건…. 모두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던 엽기 범죄들이다. 공교롭게도 모든 사건들이 단원경찰서 관할이다. 여중생 4명이 동급생 1명을 집단 폭행하고 동영상으로 촬영한 사건은 해당 동영상이 인터넷에서 유포되면서 일파만파 파장을 불렀다. 격분한 네티즌이 가해자를 추적해 실명을 공개하면서 제2의 피해가 우려되기도 했다. 중국인이 한국 여성을 토막 살해한 사건도 수법이 잔혹하고 시체 유기장소가 지하철 화장실이었다는 점에서 시민을 공포에 떨게 했다. 잔혹 사건이 잇따르자, 단원경찰서엔 '범죄 백화점'이라는 반갑지 않은 별칭이 붙기도 했다.

23일 접수된 사건도 토막 살인 못지 않게 잔혹했다. 아파트 단지 화단에서 피해 여성의 시신이 하복부가 노출된 채 버려져 있었던 것이다. 강간 흔적은 없었고 시신 외부에서 정액이 검출됐다. 경찰은 변태 성욕자의 범죄로 추정, 수사를 진행중이다.

◇외국인 비율 높고 제보 없어=여느 경찰서보다 바쁜 데는 이유가 있다. 사건은 많은데 제보자가 극히 적다. 아파트 화단에서 살해당한 김씨의 경우 7000여장의 팸플릿을 돌리고 현수막 20개를 내걸었다. 일대 아파트 주민들을 일일이 방문하기도 했다. 피해자가 택시를 탔다는 점을 감안, 안산시 택시 2079대를 전부 조사했다. 하지만 목격자는 한 명도 없었다. 아파트 입구에서 화단까지 폭행당하고 끌려 가는 시간을 감안하면 납득이 안 가는 대목.

이는 단원구의 인구적 특성과 관계되는 것으로 보인다. 단원구가 속한 안산 인근에는 반월과 시화 공단이 있다. 외국인 근로자가 많다. 경기도내 외국인 20만여명 중 10%(2만4000여명)가 안산에 산다. 그들 중 80%가 단원구 주민이다. 초창기 외국인들이 단원구에 주거타운을 이루면서 꾸준히 늘어난 결과다. 불법체류자까지 포함하면 훨씬 늘어난다. 이렇다 보니 주민 간에 경계심리가 있어 제보가 원할하지 않은 것이다.

외국인 비율이 높다보니 외국인 관련 범죄도 많다. 지난해만 255건이 터졌다. 7년째 안산에서 택시를 운전하고 있는 강진수(41.가명)씨는 "중국인에게 칼로 찔리고 돈을 뜯긴 운전자들이 여럿 된다"며 "밤에는 웬만해선 이쪽으로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희천 경위는 "이곳에서는 오히려 우리가 외국인처럼 느껴진다"면서 "말이 안 통하는데다 큰일을 저지르면 자기네 나라로 가버리는 경우가 많다"고 수사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수사에 미치다=여건은 최악이지만 수사는 열심이다. 단원경찰서는 지난해 뺑소니 검거율이 전국 1위였다. 경기도 33개 경찰서 2771건의 10%에 해당하는 274건을 적발했다. 지난해 12월과 1월 음주단속 특별기간에도 전국 적발 건수 1위를 기록했다. 총 12명의 인원이 24시간 검문에 나선 결과다. 사건 사고가 많은 지역이라지만 뛰는 사람의 열성이 없어선 불가능한 실적이다.

열성을 뒷받쳐주는 것은 집요함이다. 토막 살인 사건 때 강력팀과 의경 2개 중대를 동원하여 인근 야산에서 시신을 수습해 유족에게 돌려 주기도 했다. 최성철 서장(54)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자발적으로 임무를 맡아 일하는 게 우리 경찰서의 강점"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열성을 인정받아 지난해 11명이 특진한 데 이어 올해도 벌써 3명이 특진했다.

김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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