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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울창한 열대림…끝없는 해안선|원시 춤추는 환상의 땅|말레이시아 사바/코타키나발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낯선 나라를 쏘다니는 여행객들도 신문기자처럼 종종「특종」에 접하는 경우가 있다.
작은 특종으로는 희한한 음식을 먹어보거나 특별한 전시물 같은 것을 보게 되는 경우다. 큰 것으로는 정말 색다른 경험을 하는 경우인데 이럴 때는 마치 횡재한 기분과 다를 바 없는 것이 여행자들의 솔직한 심정일 것이다.
필자의 경우 큰 특종으로는 런던의 버킹엄 궁전 근위병 교대식이 열리는 근엄한 순간에 말이 오줌을 눠 둘러섰던 관광객들과 함께 박장대소했던 일, 페테르부르크의 공산당 발상지인 스몰리 광장에서 소련 청년들이 우리 애국가를 연주해 주었던 일등이 있다. 또 하나 평생 잊을 수 없는 것은 모스크바로 향하는 9시간동안의 야간열차에서 우연히 같은 침대 칸에 배정을 받은 23세의 소련 여인과 침대를 나란히 맞대고 동침 (?)했던 일이다.

<현대식 빌딩 공존>
비록 그 9시간이 안타까움의 연속으로 잠만 설친 괴로운 시간들이었지만 적어도 네댓 시간은 팽팽한 긴장과 설렘, 그리고 온갖 공상으로 짜릿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재작년 말레이시아 여행길에서도 필자는 자그마한 특종을 했다.
자동차를 타고 육로 여행을 하다가 어느 시골에서 열린 전통 결혼식에 참석하여 신랑·신부 촬영도 해주고 피로연에까지 끼여 한 상 가득 얻어먹은 불청객이 돼버렸던 것이다.
말도 안 통하는 이방인을 위해 영어 잘하는 젊은 친구를 내세워 신랑 아버지가 이것저것 권하며 결혼식 절차를 설명해주는 것이 영락없이 우리네 시골 인심이었다.
끊임없이 외세의 침범을 받아오다가 20세기에 들어서야 완전한 독립 국가로 변신한 나라임에도 착한 천성은 변함이 없는 모양이다.
말레이시아는 식민 종주국이 물려준 민주주의 형태에 충실한 나라로 말레이 반도의 11개 주와 보르네오 섬의 사바 및 사라와크의 13개 주로 구성된 연방 국가다.
사라와크와 사바 지역은 본토와 멀리 떨어져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에 싸여 있어서인지 수도인 콸라룸푸르 관광에서 맛 볼 수 없는 휴양지로서의 정취가 가득한 곳이다.

<수상 스포츠 발달>
무성한 열대림을 따라 뻗은 해안선과 밀림이 뿜어내는 원시적인 분위기는 아직 지구상에 편히 숨쉴 수 있는 곳이 많이 남아 있다는 안도감까지 맛보게 한다.
사바의 중심도시인 코타키나발루는 인구 15만명 정도의 아담한 도시로 요즘은 현대식 고층빌딩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맑은 하늘, 갖가지의 산호와 아름다운 빛깔의 물고기들이 가득한 푸른 바다,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울창한 열대림 등은 환상적인 풍경이 아닐 수 없다.
해안 도시다 보니 수상 스포츠가 발달하여 커누 타기나 낚시 등 사는 모습이 무척 여유 있어 보인다.
해물 요리도 빼놓을 수 없는 명물로 이것저것 맛보기에는 우리 돈으로 몇천원 정도면 가능하다.
사바에서의 여행은 문명의 유적 탐방보다 때묻지 않은 자연의 관광이 될 수밖에 없다.
코타키나발루를 출발하여 파타·키마니스·뷰포트를 들러 파다스 계곡의 빼어난 경관을 즐기고 테놈까지 가는 여행길에서는『세계는 넓고 볼 것은 많다』는 말이 절로 입에서 튀어나온다.
테놈에서 보게 되는 무르트족의 거주지는 마을 전체가 한 집으로 되어 있어 「별스럽게 다 사는 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옆으로 긴 집을 지어놓고 온 마을 사람들이 이 긴 집에서 거주하고 있는 것이다. 춤과 노래를 즐기는 집시 같은 삶이 그 속에는 있다.
말레이시아 관광의 압권이 사바 지역이라면 사바에서의 하이라이트는 또 키나발루산이다. 해발 4천m가 넘는 이산은 동남아시아의 최고봉이다.

<반기는 오랑우탄>
이 일대는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현지 사람들은 「과거의 영혼이 깃든 곳」이라 하여 신성시하는 산이기도 하다. 울창한 산림과 형형색색의 새들만이 매력의 전부는 아니다.
겨울에도 눈이 오지 않고 여름에도 서늘한 기후와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오랑우탄 서식지도 이 산 속에 있다.
사람이 정말 원숭이에서 진화한 것이 맞다면 오랑우탄은 그 중간쯤에 해당될 것 같은데 인도네시아에서는 이 오랑우탄에 성폭행을 당했다는 설도 있고 보면 으스스해진다.
산허리 몇 곳에 사다리나 산막·통나무집이 설치돼 있는 것이 편의 시설의 전부로 날씨가 안 좋을 때는 아예 등반을 포기하거나 안내자와 동반하는 것이 상책이다.
구름에 덮인 장엄한 산봉우리가 밑에서 본 키나발루산 외 위용이라면 정상에서 내려다보이는 시계는 황홀하고 신비한 대자연 바로 그것이다.
오염되지 않은 땅, 원시적인 분위기를 간직한 해변, 여러 종족들의 살아가는 모습 등을 함께 볼 수 있는 곳이 말레이시아 사바 지역이다. 백준 <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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