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사 최초의 음란성 시비 <반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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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장정일의 <내게 거짓말을 해봐>, 마광수 교수의 <즐거운 사라>, 탤런트 서갑숙의 <나도 때론 포로노그라피의 주인공이 되고싶다>, 만화 <천국의 신화>, 연극 <미란다>, 영화 <거짓말> 등.

'에로티시즘과 포르노의 한계를 어떻게 규정하느냐'를 둘러싼 예술작품의 '외설시비'가 정확한 잣대를 마련하지 못한 가운데, '외설시비'로 법정에 회부된 최초의 국내 문학작품은 69년 출간된 염재만씨의 소설 <반노>였다.

당시 3선개헌을 앞둔 박정희 대통령의 '퇴폐척결' 지시에 따라 직접 수사에 착수했던 검찰이 <반노>에 대해 내린 평가는 "변태적인 남녀가 동거하며 성교하는 장면을 노골적이며 구체적인 부분까지 묘사하여 통상인으로 하여금 성욕을 자극, 흥분시키기에 족하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공무원이던 염재만씨의 처녀작인 <반노>는 세상에 채 알려지기도 전에 '분서(焚書)'가 되고 만다.

70년 염씨는 "당신 사타구니를 좀 봅시다. 얼마나 도도한지 봅시다" 등의 표현이 문제가 되어 음란문서제조죄로 기소됐고, 1심재판에서 법원은 "…서로의 국부가 교면스러운 빛을 발산하면서 한껏 부조되고 그 위에 온갖 충격이 요동쳐 갑니다"등을 문제삼아 1심에서 벌금 3만원형을 내렸다.

하지만 염재만씨는 이에 불복, 항소해 7년 가까이 유무죄판결을 다섯번이나 되풀이하다 "문학에 대한 음란성 여부는 작품 중 인간의 성행위에 대한 향락적이고 유희적인 장면을 묘사한 작품의 어느 일부분만 따로 떼어놓고 논할 수 없으며, 이 작품 전체와 관련시켜 판단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와 함께 75년 오늘 (12월9일) 대법원에서 무죄확정을 받았다.

우리나라 최초의 외설시비였던 이 사건은 당시 보수적인 법조계로부터 이끌어낸 무죄판결로, 예술작품의 음란성 여부를 부분적 묘사가 아닌 주제의 전체적 조명속에서 이해해야 할 문제라는 인식을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의미를 인정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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