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지야 내전 일단락/대통령 국외로 탈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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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반정부군 총선용의 밝혀/셰바르드나제 전 소외무 연정참여 시사
【트빌리시 로이터·타스=연합】 지난 2주이상 동안 2백여명의 희생자를 내며 계속돼온 그루지야 내전은 6일 즈비아트 감사후르디아 대통령이 인접국인 아르메니아로 탈출하고 반군 지도부가 새정부 구성을 위해 빠르면 오는 4월 조기총선을 치를 용의가 있음을 밝힘으로써 일단락됐다.
이와 함께 그루지야 출신 에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전 소련 대외관계부장관은 이날 『사태 수습을 위한 어떤 과정에도 참여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으며 반군측도 이를 즉각 환영,그의 정치복귀 여부가 주목된다.
반군 소식통들은 이날 감사후르디아 대통령이 가족 및 측근 60여명과 함께 차량 10여대를 이용,수도 트빌리시 소재 그루지야 의사당 지하 벙커를 떠났다고 전했다.
이들 소식통은 그동안 의사당을 포위해온 반군측이 인명피해가 더이상 발생하는 것을 막기위해 길을 열어줬다고 전했다.
감사후르디아 대통령은 트빌리시를 빠져나와 처음 아제르바이잔으로 향했으나 아르메니아로 방향을 바꿨으며,7일 현재 아르메니아내 그루지야 접경 마을 이즈헤반에 머무르고 있다고 타스통신이 보도했다.
감사후르디아 대통령의 탈출과 관련,제3국 망명 기도설과 반군에 붙잡혀 트빌리시로 압송됐다는 등의 소문이 엇갈리고 있다.
한편 반군지도자 텐기스 키토바니 공화국수비대 사령관은 6일 기자들과 만나 『새로운 민주 그루지야가 탄생됐다』고 선언했다.
군사평의회에 동참하고 있는 또다른 인사들도 ▲조속한 민정 이양 ▲빠르면 오는 4월 총선 실시 ▲감사후르디아 대통령 재판회부 노력 등을 약속했다.
이와 관련,구왕족인 바그라티오니가를 귀국시켜 입헌군주제로 복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내전 종식을 거듭 호소해온 셰바르드나제 전 장관은 이날 러시아TV와 가진 회견에서 그루지야에서 새로 구성될 연립정부의 참여의사를 시사했고 군사평의회측도 이를 환영하는 반응을 보임으로써 셰바르드나제 전 장관의 정치 복귀가 이뤄질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통일세력 없어 「제2의 분열」 우려/수도이외지역선 대통령 지지 여전(해설)
정부군과 반정부군으로 엇갈려 지난해 9월부터 유혈충돌을 벌여온 그루지야 내분이 6일 오전 즈비아트 감사후르디아 대통령의 국외탈출로 일단락됐다.
감사후르디아 대통령은 지난 70년대부터 두차례에 걸친 투옥과 탄압을 무릅쓰고 인권운동과 그루지야독립에 몸바쳐온 인물이다. 그는 지난해 5월 체코슬로바키아의 바츨라프 하벨 대통령에게 비견되는 「그루지야민주화의 기수」라는 찬사를 들으며 압도적 지지속에 구소련공화국 지도자중 최초의 민선대통령이 됐다.
그러나 그는 「완전무결한 그루지야독립」이라는 이상에 치우쳐 정적들을 독립에 장애가 된다는 이유로 탄압하는등 철권통치를 일삼아 집권 7개월여만에 몰락을 자초하고 말았다.
그러나 감사후르디아 대통령의 퇴진이 곧 그루지야 내분의 수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텐기스 시구아 전 총리로 대표되는 반정부세력들도 일정한 노선을 갖춘 통일세력이 아니라 감사후르디아 대통령에게 반대한다는 점에서만 의견을 같이하고 있을 뿐이어서 조만간 실시될 대통령선거등을 계기로 또다시 분열상을 드러내 제2의 그루지야사태가 유발되리란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반정부군주도의 군사평의회가 지난 2일 시구아 전 총리를 수반으로 하는 임시정부를 구성했지만 그 면면엔 애당초 융합할 수 없는 이질적 세력들이 뒤섞여 있다.
시구아 총리 자신은 그루지야 경제회생을 위해 그루지야가 독립국가공동체에 합류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반면 그가 그루지야내 남오세티아 자치구 최고회의 의장으로 임명한 토레스 쿨룸베고프는 남오세티아의 완전독립을 위해 투쟁해온 독립지상주의자다. 또 국방장관에 임명된 레본 샤라셰니제장군은 반정부군을 실질적으로 지휘해온 텐기스 키토바니 전 그루지야 민족수비대장과 군부장악을 놓고 일전을 벌일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더욱이 이번에 쫓겨난 감사후르디아 대통령은 아직도 트빌리시를 제외한 그루지야전역에서 광범위한 지지를 얻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이들이 조만간 조직적인 투쟁을 전개할지도 모른다는 전망이 벌써부터 나돌고 있다.
그루지야정국이 이처럼 혼미일로를 치달음에 따라 이곳 모스크바에서는 그루지야출신의 에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전 소련 대외관계부장관이 그루지야 대통령에 추대될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대두되고 있다. 셰바르드나제는 5일 감사후르디아 대통령의 사임을 주장하면서 필요하다면 자신이 「고향 그루지야의 민주화를 위해 봉사」할 뜻이 있음을 비췄었다.
한편 그루지야사태는 내부의 권력투쟁 못지않게 소련해체로 생긴 중앙권력의 공백을 틈타 더욱 악화됐다는 측면에서 독립국가공동체의 앞날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그루지야가 발트3국을 제외한 구소련공화국들중 유일한 공동체불참국이기는 하지만 공동체가 시종일관 그루지야사태를 수수방관할 수 밖에 없었다는 사실은 중앙권력없는 공동체가 유사한 내분에 대한 해결능력이 원천봉쇄돼 있음을 입증했다는 것이 중론이다.<모스크바=김석환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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