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제리총선/회교정치세력 부활 예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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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종교독재 우려 서방기업 철수준비/터키등 회교권국 도미노현상 경계
알제리 독립이래 첫 다당제 자유총선에서 야당인 회교구국전선(FIS)이 집권 알제리 민족해방전선(FLN)을 누리고 압승,아랍권에 회교근본주의 세력의 정치적 부활을 예고했다.
FIS는 2천3백만인구중 90%를 차지하는 회교도를 기반으로 회교율법에 의한 국가통치를 앞세워 빈민층의 지지를 받고 있는 회교근본주의 정당이다.
단원제의회 4백30석을 놓고 49개 정당 및 무소속후보 5천7백12명이 경합을 벌인 이번 총선에서 28일 새벽까지 당락이 확정된 2백6석가운데 FIS가 1백67석,FLN이 16석,사회주의무력전선(FFS)이 22석을 각각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1위후보의 득표가 과반수에 미달,내년 1월16일 결선투표가 확정적인 1백80개 선거구에서도 FIS소속후보 1백71명,FLN후보 1백58명,FFS후보 13명의 진출이 확정됨으로써 FIS가 의회의 지배정당이 될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알제리는 93년 3월 임기가 만료되는 샤들리 벤제디드 대통령의 FLN과 FIS의 코아비타시옹(여야동거)이 불가피하게 됐다.
더구나 FIS측은 여세를 몰아 조기 대통령선거를 요구하고 이 요구가 관철되지 않으면 총파업도 불사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FIS의 급부상은 알제리 국내외에서 우려와 경계의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미 알제리의 대기업등은 종교정치 일변도의 회교근본주의의 독재를 우려,재산을 해외로 유출하고 있으며 석유등 자원개발을 맡아온 서방기업들마저 철수작업을 서두르고 있다.
또 모로코·튀니지·리비아 등 인접 회교권 국가들은 각각 자국내 지하 회교정치세력의 전면부상을 우려,FIS의 집권을 달갑잖게 여기고 있다.
특히 FIS의 부상을 우려하고 있는 나라는 터키다.
소연방의 소멸로 주목을 끌고있는 중앙아시아 카자흐등 회교권 6개 공화국에 회교근본주의가 지배하고 있는 이란의 접근노력을 저지하는데 외교력을 집중하고 있는 터키는 FIS의 알제리정권 장악이 북아프리카에서 중동에 걸친 회교권 국가들에 세속정권붕괴 도미노현상으로 이어질 것을 경계하고 있다.
FIS의 임시지도자 압델 카데르 하차니가 12월초 총선참여를 선언하면서 『냉전이후 국제질서는 유럽의 세속적 민주주의와 아랍 회교권의 대립구도가 될 것』이라고 전망한 것도 이같은 국제분위기를 염두에둔 것으로 보인다.
FIS는 지난해 첫 다당제지방선거에서 회교율법에 의한 통치를 기치로 FLN을 누르고 승리하며 회교지하세력을 정치전면으로 부상시켰다.
FIS는 지난 6월 예정된 총선을 앞두고 결선투표등 집권당에 유리한 선거법의 개정과 대통령선거 동시실시를 요구하며 총선거부투쟁에 돌입,다당제 개혁정치의 와해를 우려한 정부와 6개월여간 충돌,55명의 희생자를 냈었다.
알제리는 80년대 들어 주수입원인 석유·천연가스의 가격하락으로 정부의 경제지원이 줄어들면서 주름살이 깊어지기 시작,88년 식량파동이후 정부의 개혁조치에도 불구,내리막길을 걸어왔다.
알제리는 현재 실업률 23%,외채 2백70억달러에다 대달러 통화가치 하락률이 매달 20%를 넘어서고 8명이 방 1개를 공유하는 주택보급률에다 달러가 아니면 자동차부속하나 교체하기 힘든 극심한 경제난에 직면해 있다. 알제리 국민들이 이번 선거에서 서구식 경제로의 개혁을 약속한 FLN을 버리고 경제적 비전이 모호한 과격 회교근본주의의 속성을 숨기지 않은 FIS를 선책한 것도 「종교적 구원」이라는 극한적 비원에 바탕을 둔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번 총선에서 기권율은 42%로 이는 기대를 걸만한 정당이 없는데 대한 국민적 실망을 반영하고 있다.<이기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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