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오쩌둥(右)과 그의 차남 마오안칭.
소련에 유학했던 마오안칭은 49년 귀국해 중앙선전부의 마르크스.레닌 저작 번역소에서 번역 업무를 맡아 10여 권을 번역 출간하고 1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어렸을 때 뇌를 다친 데다 형이 전사한 충격으로 병을 얻어 랴오닝(遼寧)성 다롄(大連)에서 오랜 기간 요양했으며 병세가 호전된 뒤에는 부모의 기념문집 출판과 공산혁명을 소재로 한 영화 제작에 참여했다. 부인 사오화(邵華.69)와 아들 마오신위(毛新宇.37)를 데리고 여러 차례 아버지 마오 주석이 대장정 때 지났던 옛길을 답사하기도 했다.
부인 사오화는 인민해방군 군사과학원 부부장을 역임한 소장 출신으로,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위원을 15년간 지냈다. 지금은 중국작가협회 회원과 중국촬영가협회 주석으로 활동하고 있다.
마오의 유일한 손자인 마오신위는 인민대학 역사학과를 졸업한 뒤 군에 입대해 현재 중령(中校) 계급을 달고 군사과학원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마오안칭의 사망으로 마오 주석이 네 명의 부인 사이에 뒀던 3남7녀 가운데 생존자는 이제 딸 두 명으로 줄었다. 마오 주석은 1907년 부모의 뜻에 따라 여섯 살 연상의 리바오산(李寶珊)과 결혼했으나 자녀를 두지 않고 헤어졌다. 셋째 부인 허쯔전(賀子珍)과는 6명의 자녀를 뒀으나 47년 마오가 당시 자신의 가명(李得勝)의 성을 따 이름을 지은 딸 리민(李敏.71)만 생존해 있다.
문화대혁명의 주역인 배우 출신 장칭(江靑)을 39년 넷째 부인으로 맞은 마오는 그 사이에 낳은 딸에게 장칭의 본명(李雲學)의 성을 따 리너(李訥.67)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베이징=장세정 특파원
*** 26일자 8면 '마오쩌둥 차남 마오안칭 지병으로 사망' 기사에서 나이가 빠졌습니다. 1923년 후난(湖南)성 창사(長沙)에서 태어난 마오안칭(毛岸靑)은 24일 84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