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오쩌둥 차남 마오안칭 지병으로 사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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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마오쩌둥(右)과 그의 차남 마오안칭.

마오쩌둥(1893~1976년) 전 중국공산당 주석의 차남 마오안칭(毛岸靑)이 23일 베이징(北京)에서 지병으로 숨졌다고 신화통신이 24일 보도했다. 그는 마오 주석이 둘째 부인 양카이후이(楊開慧.30년 29세로 국민당에 의해 처형당함) 사이에서 얻은 세 아들 중 둘째다. 장남 마오안잉(毛岸英)은 한국전쟁 때 인민지원군으로 참전했다가 50년 11월 미군의 폭격으로 사망했다. 30년에 출생한 셋째 안룽(岸龍)은 실종됐다.

소련에 유학했던 마오안칭은 49년 귀국해 중앙선전부의 마르크스.레닌 저작 번역소에서 번역 업무를 맡아 10여 권을 번역 출간하고 1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어렸을 때 뇌를 다친 데다 형이 전사한 충격으로 병을 얻어 랴오닝(遼寧)성 다롄(大連)에서 오랜 기간 요양했으며 병세가 호전된 뒤에는 부모의 기념문집 출판과 공산혁명을 소재로 한 영화 제작에 참여했다. 부인 사오화(邵華.69)와 아들 마오신위(毛新宇.37)를 데리고 여러 차례 아버지 마오 주석이 대장정 때 지났던 옛길을 답사하기도 했다.

부인 사오화는 인민해방군 군사과학원 부부장을 역임한 소장 출신으로,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위원을 15년간 지냈다. 지금은 중국작가협회 회원과 중국촬영가협회 주석으로 활동하고 있다.

마오의 유일한 손자인 마오신위는 인민대학 역사학과를 졸업한 뒤 군에 입대해 현재 중령(中校) 계급을 달고 군사과학원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마오안칭의 사망으로 마오 주석이 네 명의 부인 사이에 뒀던 3남7녀 가운데 생존자는 이제 딸 두 명으로 줄었다. 마오 주석은 1907년 부모의 뜻에 따라 여섯 살 연상의 리바오산(李寶珊)과 결혼했으나 자녀를 두지 않고 헤어졌다. 셋째 부인 허쯔전(賀子珍)과는 6명의 자녀를 뒀으나 47년 마오가 당시 자신의 가명(李得勝)의 성을 따 이름을 지은 딸 리민(李敏.71)만 생존해 있다.

문화대혁명의 주역인 배우 출신 장칭(江靑)을 39년 넷째 부인으로 맞은 마오는 그 사이에 낳은 딸에게 장칭의 본명(李雲學)의 성을 따 리너(李訥.67)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베이징=장세정 특파원

*** 26일자 8면 '마오쩌둥 차남 마오안칭 지병으로 사망' 기사에서 나이가 빠졌습니다. 1923년 후난(湖南)성 창사(長沙)에서 태어난 마오안칭(毛岸靑)은 24일 84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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