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꿈나무] "교통체증 네 탓" 음모 벌이고 콩알침 쏘고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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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손수레 전쟁

진 메릴 지음, 김율희 옮김

다른, 240쪽, 9800원, 초등 고학년 이상

'아프가니스탄 바그람 기지 앞에서 자살폭탄 테러가 발생해 다산부대 윤장호 병장이 사망했다.'

'파키스탄에서 토착 무장세력과 외국계 무장조직이 충돌해 최소 100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부상을 당했다.'

'이라크 어린이들까지 폭탄 테러에 동원되고 있다.'

하루가 멀게 쏟아져나오는 전쟁.테러 관련 뉴스들. "전쟁은 왜 일어나죠?"라는 아이들의 질문에 뭐라고 답을 해주면 좋을까. 한 마디로 응대하기는 어려운 질문이다. 뉴욕 시내에서 벌어진 트럭과 손수레 업자 간의 전쟁을 그린 이 책은 이에 대한 긴 답이 될 수 있을 듯하다.

뉴욕 거리는 점점 정체가 심해진다. 큰 트럭들이 온통 길을 점령해서다. 트럭에 대한 비난 여론이 일기 시작하자 거대 트럭 회사 세 곳의 대표는 비밀 회담을 연다. 이들은 교통체증의 원인을 '손수레'에 돌리고 이들을 길에서 몰아내기로 담합한다. 교통혼잡 책임을 떠넘기는 '여론 몰이'에다 트럭의 거친 공격에 지친 손수레 상인들은 마침내 게릴라전을 벌인다. 콩알침(침이 꽂힌 콩)을 트럭에 발사해 타이어에 펑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트럭.손수레 관련 당사자가 아닌 이들도 전쟁에 개입한다. 거대한 트럭 사이에 꼼짝없이 끼어서 오도가도 못한 경험이 있었던 유명 여배우 웬다는 손수레 상인들에게 군수품(콩과 침)을 제공한다. '거대한 트럭은 경제 발전의 상징'이라고 주장하는 트럭업주의 압력에 굴복한 뉴욕의회는 콩알침의 재료인 침에 고율의 세금을 부과하는 법령을 통과시킨다.

어린 아이들까지 전쟁에 개입한다. 콩알침으로 트럭 타이어를 펑크내는 놀이에 참여한 것이다. 트럭 업주들은 손수레 상인 측 지도자를 납치할 음모를 꾸미기에 이른다. 경제 발전 논리를 꾸준히 주입받은 뉴욕시민들은 처음엔 트럭을 비난할 생각도 못했다. 그러나 트럭이 수선화 손수레를 들이받는 사진이 공개되면서 여론의 방향은 확 틀어진다. 급기야 뉴욕시장은 휴전을 선포하는데….

총칼로 찌르고 포탄을 쏟아부어야만 전쟁은 아니다. 소설은 트럭과 손수레라는 운송 수단간의 대결을 통해 전술과 전략, 무기 개발, 군자금 조달, 여론 몰이, 인명 피해 등 전쟁의 메커니즘을 재미있게 보여준다. 피가 튀는 등의 잔인함은 없기에 아이들의 정서를 해치지 않고도 전쟁과 평화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어 매력적이다.

이 소설은 처음 출간된 1964년 이후 두 차례 개정됐다. 이야기의 느낌을 생생히 살리기 위해 시대적 배경을 수정한 것이다. 이 책은 1996년을 배경으로 설정한 1985년 재개정판을 번역한 것이다.

어린이.청소년용 소설이긴 하지만 어른들도 읽을만하다. 소설 곳곳에 숨어 있는 풍자를 찾아내는 재미가 꽤 쏠쏠하다. 사실, 전쟁과 평화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야 하는 건 아이들보다는 어른들 몫이 아니던가.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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