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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를 사랑하라 … 있어야 사랑하지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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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당신의 쉴 곳 없네."

성경의 한 구절이냐고요? 아뇨. 대중가요의 한 대목입니다. 시인과 촌장의 '가시나무'란 노래죠. 그렇습니다. 사람의 몸은 80조에 달하는 세포로 이뤄져 있다네요. 그 숫자만큼 숱하디 숱한 '나'를 안고 사는 게 또 사람입니다. 어디, 하나씩 끄집어내 볼까요? 이쪽의 '나'는 욕망이고, 저쪽의 '나'는 집착이고, 어떤 '나'는 자존심, 또 다른 '나'는 열등감 등등. 세도 세도 끝이 없네요. 정말, 내 속엔 무수한 내가 있군요.

이제 성경 말씀을 꺼내 볼까요. 예수님은 산에서 사람들에게 말씀하셨죠. "원수를 사랑하라."(마태복음 5장) 그런데 참 이상합니다. '이웃을 사랑하라''도둑질하지 마라'는 피부에 와닿습니다. 그런데 원수를 사랑하라니요. 도대체 '원수'를 가진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요.

어릴 적 봤던 중국 무협영화가 생각나네요. 부모를 죽이고, 스승을 죽이고, 조국을 멸망시킨 이들이 바로 '원수'죠. 주위를 둘러보세요. 이런 원수를 가진 이들이 얼마나 됩니까. 영화나 소설 속, 아니면 현실 역사의 몇몇 지점에서나 만날 수 있는 이들이죠. 그런데 예수님은 모두를 향해 말했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 그리고 덧붙이셨죠.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태복음 5장48절)

도대체 '원수'가 뭘까요. 예수님이 말씀하신 '원수'는 어디에 있을까요. 그건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나, 운명의 드라마가 펼쳐지는 극적인 곳만 가리킨 게 아닐 듯합니다. 우리 모두의 소소한 일상 속에 그 원수가 숨어 있는 게 아닐까요. 그래서 원수는 산만큼 클 수도, 눈꼽만큼 작을 수도 있죠. 왜냐하면 온전함을 가로막는 내 마음의 생채기는 모두 '원수'이기 때문이죠.

바쁜 출근길에 옆에서 끼어든 차, 사소한 문제로 다투었던 남편 혹은 아내, 의견 충돌로 삐끗한 직장 동료, 이런저런 이유로 연락을 끊은 옛 친구, 작든 크든, 짧든 길든 내 마음에 박히는 모든 화살들이 '나의 원수'입니다. 그 화살을 오래 끌어안고 살수록 상처는 깊어가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 달리 말해 '화살을 빼라'고 하신 게 아닐까요.

그럼 어떻게 해야 화살이 빠질까요. 어찌하면 원수를 사랑할 수 있을까요.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눈을 감아 보세요. 그리고 차분하게 짚어 보세요. '내 안의 화살은 누가 쏜 것일까' '그 숱한 화살의 시위는 과연 누가 당긴 걸까'. 거기에 '열쇠'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나에게 활을 쏜 사람은 남이 아닙니다. 바로 나 자신입니다. 그래서 '내 탓이오'를 정말, 정말, 정말 진심으로 인정할 때 박혔던 화살도 빠지고, 상처도 아물게 됩니다. 원수는 원수가 아닐 때 사랑할 수 있는 거죠. 그때라야 비로소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 말씀을 따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깨닫게 됩니다. 원수를 사랑하라, 그건 예수님께서 참으로 나를 위해 하신 말씀이구나. 이제 하루에 하나씩, 내 안에 박힌 화살을 뽑아보시면 어떨까요.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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