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신선? 선정? '뭐든지 찍어대는' 케이블TV 다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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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tvN의 ‘리얼스토리 묘’를 진행하는 호란.

#1. 속칭 '나가요 걸'로 불리는 노래방 도우미 알선 업체 사무실에 들어간다. 가방 속엔 몰래 카메라를 숨겨놨다. 취업 의사를 밝히니 실장이란 남자가 여러 가지를 설명해 준다. 당장 머물 곳이 없다고 하자 인근 찜질방에서 숙식하라고 가르쳐 준다. 가출 주부들이 주로 이용하는 곳이라고 한다.

#2. '키스 알바'를 한다는 여고생을 만났다. 3000~5000원만 주면 키스를 해 준다는 아르바이트다. 주고객층은 30, 40대 남성이라고 한다. 조건만 잘 맞으면 2차까지 갈 수도 있다는 여고생의 말이 충격적이다.

#3. 언뜻 보면 비디오방과 비슷하다. 돈을 주고 방에 들어가니 실제 여성과 흡사한 모양의 인형이 놓여 있다. 이곳은 속칭 '인형방'. 일본 등에서 들여 온 여체 인형을 가지고 유사 성행위를 하도록 만든 것이다. 주인은 "실제 사람이 아니니 법에 걸릴 염려가 없다"고 한다.

요즘 케이블TV에서 볼 수 있는 다큐멘터리 형식의 리얼리티 프로그램 내용들이다. "어떻게 이런 것까지 취재했을까" 싶을 정도로 소재가 특이하다. 최근 자체 제작물 경쟁이 붙은 케이블 방송사들이 시청자의 눈길을 끌기 위해 발굴한 아이템들이다. 일부 내용은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며 지상파TV에 소개되기도 한다. 그러나 너무 화끈한 소재에만 매달리다 보니 일각에선 "선정성이 도를 넘었다"는 지적도 있다. 물론 제작진은 "지상파와의 차별화를 위해 어쩔 수 없다"고 항변한다. 지상파가 다룰 수 없는 영역에 카메라를 들이대는, 일종의 '틈새시장 공략'이라는 이야기다.

오른쪽 위는 tvN에서 방송하는 '독고영재의 현장르포 스캔들'과 Q채널의 '리얼다큐 천일야화'(下).

◆성역 없는 아이템 선정=대표적인 프로그램으론 tvN의 '리얼스토리 묘'와 '현장르포 스캔들', Q채널의 '리얼다큐 천일야화' 등이 있다. 모두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제작된다. 지난해 10월부터 방송된 '리얼스토리 묘'는 '성역 없는 아이템''지상파와의 차별'을 모토로 내걸었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이지만 쉽게 말 못 했던 각종 사회 문제를 호기심 많은 고양이의 시선으로 파헤친다는 의미에서 제목에 '묘(猫)'라는 글자를 붙였다. 진행은 인기 밴드 클래지콰이의 호란이 맡고 있다.

'리얼다큐 천일야화'도 비슷한 형식이다. 애인대행업.기(氣)치료사.누드모델 등 다양한 이야기를 소개한다. 다큐멘터리 전문 방송인 Q채널에서 처음 본격적으로 자체 제작해 편성한 프로그램이다. 한편 영화배우 독고영재가 진행하는 '현장르포 스캔들'은 시청자의 의뢰를 받아 남편.아내.부모 등의 불륜 현장을 포착해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거실에 설치한 몰래 카메라, 집 밖의 망원렌즈 카메라 등을 통해 불륜 현장을 생생하게 보여 주지만 실제 상황은 아니다. 전문 배우들이 정말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재연한 '페이크 다큐'다. 그러나 "흥신소 등에 들어온 의뢰를 바탕으로 만든 실제 사례라 주부 시청자들의 반응이 뜨겁다"고 제작진은 밝힌다.

◆시청자들의 적극적인 반응=이들 리얼 다큐 프로그램의 인기는 시청률에서 드러난다. '리얼스토리 묘'와 '현장르포 스캔들'은 방송 초기부터 각 채널에서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 '얼굴 마담' 프로그램이 됐다. 인터넷을 통한 시청자들의 반응도 뜨겁다. 변태 성욕의 일종인 '페티시(Fetish)'숍,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민간요법 치료사 등이 소개된 뒤엔 해당 방송사 홈페이지나 포털 게시판이 시청자 의견으로 뜨거웠다. 예전처럼 선정성을 문제 삼기보다는 "찾아가 보고 싶다"며 연락처를 묻는 글들이 다수였다. '현장르포 스캔들'의 게시판 역시 자신의 사례를 취재해 달라는 요청이 몰려든다. 어쨌든 시청자들의 '관심 끌기'에는 성공한 셈이다. 게다가 제작사 입장에서는 낮은 비용으로 높은 효과를 낼 수 있는 '효자 프로그램'이다. 보통 케이블TV 자체 제작 드라마의 편당 제작비는 8000만~1억원. 반면 리얼 다큐는 드라마의 절반 이하 비용으로 한 편을 만들 수 있다.

물론 선정주의의 함정은 여전히 남는 문제다. CJ미디어 이지형 팀장은 "리얼 다큐는 케이블TV가 지상파만큼의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분야"라며 "프로그램의 위상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만큼 앞으론 사회 고발 등 폭넓은 분야를 다룰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필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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