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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실험 실패의 원인(긴급진단)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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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소 붕괴는 지역이기주의 탓/쌓이고 쌓인 소수민족 불만/개혁 실패로 한꺼번에 폭발/고재남 외교안보연 교수·정치학 박사
소련의 「독립국가공동체」창설합의는 제정러시아때부터 이어져온 러시아제국주의의 종말을 뜻하며 레닌에 의해 시도된 유토피아적 공산주의사회 건설을 위한 실험의 대실패를 의미한다. 이는 또 1917년 10월 혁명이후 꾸준히 추구된 좁게는 소 연방내 소수민족들의 러시아화(Russification),넓게는 러시아민족을 포함한 소련국민의 「소련국민화」의 실패를 의미한다.
소련에서 사회주의사회의 발전에 따라 민족구분이 없어지고 단일국민화,나아가 단일국가화되리라는 레닌의 믿음이 무산된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소 연방결성과정에서 비러시아계민족과 볼셰비키정권이 맺은 「민족자결권」과 「연방탈퇴권」이 지켜지지 않아 소수민족의 불만이 누적됐으며 많은 공화국,특히 발트 3국과 몰도바공화국이 비자발적으로 소 연방의 일원이 됨으로써 애초부터 독립운동의 소지를 안고 있었다.
둘째,민족자결주의와 영토적·민족적 단위원칙에 입각한 행정구역 확립은 민족적 응집력과 정체성(Identity)을 더욱 강화시켰다. 53개 각공화국·자치주·민족관구는 민족분포와 거주지역에 따라 조직됐으며 러시아어가 공용어임에도 불구,민족어사용이 원칙으로 허용됐다.
또 소수민족공화국의 관리를 원주민으로 임명,소수민족을 보다 효율적으로 통치하려는 의도에서 20년대에 채택된 코레니자치야(토착화)정책은 각소수민족의 문화창달과 언어사용 등을 가능케 하고 민족주의지도자를 배출하면서 소 연방의 「용광로화」,혹은 소련국민화를 저해하고 민족연방주의를 확립시켰다.
이는 모든 공화국들이 자민족중심주의,또는 지역이기주의를 강화시켰으며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개혁정책에 의해 중앙통제가 완화되자 연방차원의 정책을 효율적으로 실시할 수 없게 만들었고 결국 페레스트로이카의 실패를 가져왔다.
셋째,고르바초프 대통령의 개혁정책,특히 글라스노스트(개방)와 민주화정책이 국가통합을 위해 부정적으로 작용했다는 점이다. 글라스노스트는 비러시아계 공화국주민들로 하여금 그동안 이데올로기적·제도적 장치에 의해 억눌렸던 불만과 민족의식,나아가 독립의식을 표출시키게 됐다.
또 고르바초프대통령이 정치개혁의 하나로 창설한 공화국 인민대표회의 대의원선거가 복수후보제와 비밀투표를 허용함으로써 독립지향적 민족주의자들이 대거당선됐고 그들이 공화국주권선언과 독립선언을 주도했다.
아울러 89년 후반부터 진행된 동유럽 공산당의 몰락과 소련경제 악화는 소련공산당의 권력독점에 대한 정당성을 크게 약화시켰고 이를 쇄신하기 위한 정치개혁은 필연적으로 소연방유지의 근본적 메커니즘인 당의 개혁을 수반하면서 소련공산당의 몰락을 가져왔다.
마지막으로 86년 카자흐공화국수도 알마아타에서 일어난 폭동을 기점으로 민족문제가 점점 격화됨에도 불구,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초기 민족정책은 임시변동적이었다.
실제로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최근까지 소수민족공화국의 독립운동과 민족분규를 페레스트로이카의 효율적 추진을 저해하는 것으로 파악했다.
이 시점에서 소 연방의 장래를 예측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슬라브족을 중심으로한 새로운 공동체 창설선언은 소비예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USSR)의 대안으로 그동안 고르바초프대통령이 추구해온 주권국가연방이 부정되고 보다더 공화국간 결속력이 약한 국가연합형태의 공동체탄생 가능성을 확실하게 해주고 있다.
그러나 경제위기와 범슬라브민족주의에 대항한 카자흐공화국 중심의 범이슬람주의의 태동가능성,연방해체에 부정적인 고르바초프대통령·군부·보수공산당원들의 저항가능성 때문에 독립국가공동체가 순조롭게 운영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또 미국의 초기헌정사가 증명하듯 중앙통제조정기능이 없으면 국가간 분규가능성이 많다는 점이다. 따라서 독립국가 공동체하에서 민족주의 팽배,또는 경제마찰 등으로 내전이 발발,물리력에 의한 정복·피정복 가능성도 있다. 이런점에서 어떤 형태로든 국가간관계를 재설정하려는 노력이 뒤따를 것이고 그렇게되면 독립국가공동체가 장기적으로 미국식 연방형태로 회귀할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다.
어찌됐든 10월혁명이후 소련의 다민족성을 고려하고 사회주의사회 건설을 위해 채택된 소연방은 내재된 모순때문에 소연방의 정체성을 약화시키면서 상대적으로 소수민족공화국의 정체성을 강화시켜 연방해체를 가져왔고 어느면에서 민족문제를 부분적으로 해결시켰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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