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한두곳 희생양 될 수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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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대검 중수부의 롯데에 대한 압수 수색으로 불법 대선자금과 관련해 이른바 '5대 기업'을 뒤지는 일이 일단 마무리됐다.

지난 2월과 여름에 SK가, 그리고 11월 들어 LG.삼성.현대 계열사 또는 협력사가 전격적으로 압수 수색을 당했다. 이로써 이들 대기업의 분식회계 등을 통한 비자금 조성, 그리고 비자금의 정치권 전달 등을 밝힐 자료를 검찰이 상당 부분 확보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와 관련, 문효남 수사기획관은 5일 "진실을 밝히는 기업과 이를 거부한 기업들의 처리가 확연히 차이가 날 것"이라고 새 메시지를 던졌다. "이제 5대 기업이 모두 압수 수색을 받았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검찰의 입장을 밝힐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이런 말을 했다"고 덧붙였다.

이 발언을 두고는 기업에 대한 단죄를 앞둔 두번째의 선전포고라는 해석이 유력하다. SK 이외의 기업들로 수사를 확대한다고 밝힌 지난달 초 "협조하는 기업은 최대한 선처하겠다"고 한 안대희 중수부장의 말을 '강공(强攻)을 위한 사전 작업'으로 본 시각이 우세했던 것과 같다.

실제로 검찰이 이후 5대 기업 계열사에 대한 압수 수색과 고위 임원 소환 등의 강도 높은 수사를 벌였다.

이번 발언도 기업들의 분식회계를 통한 비자금 조성이나 횡령.배임 등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불법에 대한 본격 수사와 관련자 처벌을 앞두고 명분을 쌓기 위한 성격이 크다는 것이다.

다른 해석도 있다. 기업 수사가 생각보다 어려움이 많아 다시 한번 기업들의 수사 협조를 구하려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이와 관련, 한 대기업 관계자는 "기업으로서는 비자금 조성 등이 드러날 경우 검찰 수사로 끝나는 게 아니다. 소액주주 소송 등 감당하기 어려운 사태가 이어지기 때문에 버틸 때까지 버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중수부 관계자는 "압수한 자료들을 보면 기업들이 사전에 대비한 흔적이 많다. 하지만 이미 정황을 확보하고 압수 수색을 하기 때문에 별 지장이 없다"면서 "오히려 뜻밖의 소득을 건진 경우도 있다"고 다른 말을 했다.

종합해보면 검찰은 일단 연말까지를 목표로 수사를 진행해 조만간 기업인들에 대한 사법처리를 시작할 분위기다. "칼을 뺀 이상 대기업 한두 곳이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전망도 검찰 주변에선 나오고 있다.

文기획관은 "수사가 해를 넘길 가능성이 크다"며 또 다른 여지도 남겨 두었다. 수사에 비협조적인 기업에 대해서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끝까지 손을 보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강주안.문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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