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밖의 왕자는 행복했을까 '안데르센 자서전-내 인생의 동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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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아버지는 귀족의 관을 짰던 나무로 만든 침대에 갓난아기를 눕혔다. 그리고 그는 침대 머리맡에서 시를 낭송한다. 1805년 4월 2일, 덴마크의 오덴세에서 '동화의 아버지'가 탄생할 때의 풍경이다.

'즉흥시인''미운 오리새끼' '인어공주'등 숱한 명작을 남긴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1805~1875). 문학을 사랑하고 사색을 즐겼던 가난한 구두 수선공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자기 삶의 동화 같은 놀라운 이야기들을 세 권의 책으로 남겼다. 이 방대한 자서전이 8백쪽이 넘는 분량의 책으로 묶여 국내 최초로 완역됐다.

일찍 죽은 아버지에게서 시적 감수성을 물려받았지만 가난과 비천한 신분 역시 그의 유산이었다. 14세에 그는 홀로 고향을 떠난다. 아름다운 목소리를 밑천으로 코펜하겐에서 배우로 성공하는 것이 그의 꿈이었다. 이 몽상적인 소년은 자신의 재능만을 믿고 덴마크 유력 인사들을 찾는다. 그러나 성공에 대한 그의 욕망은 이미 성공한 계층의 자제들에겐 허영심으로 여겨졌고, 그의 문학적 상상력은 학문의 결핍으로 조롱당했다. 후원자의 도움으로 늦게서야 공부를 시작한 그의 첫 출세작에는 문법적 오류가 많았고, 이 '철자법 틀린 죄'는 오래도록 그를 괴롭혔다. 해외 여행을 떠나며 그가 했던 기도는 '덴마크에서 가장 먼 곳에서 죽게 해달라'는 것이었을 정도였다.

평단과 신문의 악평에 고통받았던 안데르센과 실존주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의 인연이 재미있다. 청년 시절 그가 안데르센의 작품을 옹호하겠다며 책 한권 분량의 길고 난해한 평론을 발표했던 것. 그 글을 다 읽은 사람은 키에르케고르와 안데르센밖에 없을 거라는 조롱이 나돌았다. 그 역시 세간의 몰이해에 시달렸던 철학자다. 훗날 안데르센은 익명으로 작품을 발표해 문단의 적들에게서 호평을 이끌어내는'장난'을 치기도 했다.

그는 유럽 전역을 여행하며 평생을 독신으로 지냈다. 따라서 이 자서전은 시인의 눈에 담긴 19세기 유럽의 풍경화로도 읽힌다. 뒤마.디킨스.발자크.하이네.멘델스존.리스트.바그너 등 당대의 예술가들과의 교류는 잘 알려지지 않은 지성사의 한 장면이기도 하다.

결국 그는 1848년 격동의 유럽 정세를 거치며'국민시인'으로까지 추앙받는다. 쉰살에 쓴 두번째 자서전은 "드디어 그날이 온 것이다. 덴마크가 드디어 내게 아름다운 꽃다발을 선사한 것이다"라는 감격으로 마무리된다.

배노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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