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경영 분리 가능할까/정 회장 은퇴설 계기로 본 현대 앞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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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30여개사는 전문경영인에 맡겨/“주식포기 않는한 대외용” 시각도
현대그룹은 어디로 갈 것인가.
정주영 명예회장의 세금납부 거부파동이후 그의 거취와 그룹의 「변신」에 대한 세간의 관심은 일련의 정치일정과 관련,더욱 높아지고 있다.
특히 정회장의 조기은퇴설을 계기로 현대그룹에 중대한 변화가 일지도 모른다는 관측도 많다.
정회장의 조기은퇴 및 정계진출여부에 따라 현대그룹 42개 계열사의 경영체제는 대변혁이 불가피할 전망이기 때문이다.
또 설사 정회장이 국세청의 세무조사가 진행중이던 지난 10월초 밝힌대로 93년 은퇴가 실행된다고 볼때도 1년 남짓밖에 남지 않아 어차피 내년에는 그룹계열사에 대한 교통정리가 이루어질 전망이다.
정회장이 9일 본사와의 단독회견에서 밝힌 내용을 종합해보면 현대그룹은 앞으로 1인지배의 강력한 중앙집권 구도에서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지향하는 소그룹·분리운영형 체제가 될 공산이 크다.
현대그룹은 이에 따라 장기적으로는 정회장의 표현처럼 「그룹해체」의 길을 밟아갈 가능성이 많아졌다.
다만 정회장 특유의 일 욕심과 카리스마를 감안할 때 정회장이 은퇴후에도 적지않은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가늠되며 이런 의미에서 재계에서는 주식포기 등이 아닌한 은퇴는 「대외용」에 그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체제개편은 필연적이며 정회장이 9일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아우인 정세영그룹회장,6명의 아들,30여명의 전문경영인에 의한 분할경영체제가 예상된다.
정회장은 올들어 여론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소유와 경영의 분리에 찬성하며 적극 추진하겠다』『친족의 그룹회장은 아우인 정세영 회장이 마지막이며 2세들에게 그룹회장을 넘겨 주지 않겠다』고 말해 왔었기 때문에 적어도 외형상은 분권화·소그룹화를 시행할 전망이다.
정회장은 9일 현대자동차는 세영회장에게 맡기고 현대정공 회장인 2남 몽구씨등 6명의 아들에게는 7∼8개 회사를 맡기며 나머지 30여개사는 전문경영인에게 책임을 지우겠다고 밝혔다.
정회장의 아들들은 현대중공업등 14개 회사에 회장·사장 등으로 관여,상당한 경영수업을 받은 상태이며 어쨌든 실세가 될 전망이나 정회장은 상당수의 전문경영인을 운용해 2세 세습의 이미지를 희석시킬 구상인 것이다. 정회장은 자신의 2세들도 이미 「전문경영인」이 됐다는 입장이다.
다만 현재 현대그룹안에는 차남인 몽구(MK) 현대정공회장(장남은 사망)의 영향권에 있는 이른바 MK라인이 형성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지는 등 몽구 회장이 실질적인 후계자가 될 공산도 적지 않다. 현대자동차서비스회장도 맡고 있는 몽구회장측은 현대자동차가 정세영 회장에게 넘어가는데 대한 거부감을 보이고 있는 등 물밑의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측은 이번에 세금추징을 당한 주식의 변칙이동 자체가 「사전상속」을 위한 정지작업이라고 보고있다. 국세청 조사팀은 주식이동조사 과정에서 「MK그룹에 대한 후계체제 구축추진」이라는 인상을 받았다고 털어놓고 있다. 실제로 이번 추징세액을 보면 몽구 회장이 4백7억원으로 압도적으로 높고 몽헌씨(현대전자 사장·5남)가 7억원,몽준씨(현대중공업 고문·6남) 44억원 등이었다.
정회장은 수조원에 이르는 개인재산(비상장회사주식)은 계열사 종업원들에게 싸게 양도하거나 사회사업재단에 기증하는 등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밝힌 상태여서 「소유의 분산」이 어떻게 이루어질지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28개 비상장 계열사들은 요건이 갖추어지는 순서대로 2∼3년안에 대부분 공개해 「국민기업」이 되게하겠다는게 정회장의 구상이다.
현대는 올 하반기에도 현대상선과 고려산업개발의 공개를 추진,감리등 절차를 마쳤으나 세무조사건과 묘하게 겹치면서 주식과잉공급을 우려한 증권당국의 제동으로 일단 보류되어 있는 상태다.
정회장은 비상장 주력사인 현대중공업도 내년말이면 「3년간 이익배당금 발생」의 요건에 해당되므로 기업공개의 약속을 지키겠다는 주장이다.
현대의 앞날은 정회장의 정부와의 갈등,정계진출여부와 관련해 앞으로 적지 않은 변화를 겪게 될 것으로 보인다.<김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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