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허리띠 졸라매자/심상치 않은 무역적자(긴급진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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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꾸준한 통화·재정긴축으로/국내경제 여건부터 개선을/양수길 한국개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올해 무역적자는 통관기준으로는 1백20억달러를 상회하고 국제수지 기준으로는 85억달러 내외에 이를 전망이다. 영국의 에지워스 교수는 일찍이 수출과 수입을 시계의 두 바늘에 비유한 바 있다. 두 바늘을 움직이기 위해 시계판의 이면에는 여러개의 톱니바퀴가 복잡하게 맞물려 돌고 있다. 마찬가지로 수출과 수입은 국내경제의 여러가지 메커니즘의 복합적 작용의 결과로 결정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역적자의 지속적인 확대는 국내경제에 심상치 않은 문제가 있음을 반영한다고 보아야 하며,우리는 정확한 진단과 올바른 처방으로 이에 대처해야 할 것이다.
○두개의 시계바늘
수년전 필자는 적정무역흑자규모를 GNP의 1∼2% 수준으로 보는 견해를 발표한 적이 있다. 적정규모의 흑자가 매년 유지되지는 않을 것이다. 때로는 그 이상의 흑자,때로는 그 이하의 흑자 내지 적자도 기록되지만 몇년에 걸친 경기변동주기 전체에 걸쳐 평균적으로 약간의 흑자가 기록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뜻이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86∼88년의 무역흑자가 GNP의 5∼10%에까지 이르렀음을 볼때 그 이후의 무역수지악화는 어느 정도까지는 바람직한 것이었고 또 약간의 적자가 나타나는 것도 크게 문제될 것이 아니다. 그러나 GNP의 3%내외에 이를 금년의 무역적자는 이러한 기준으로 보아도 다소 과도한 것이다.
금년의 무역수지동향에는 두가지의 이채로운 점이 있다. 하나는 수출이 지난 2년동안의 부진세를 탈피하고 10%이상의 증가율을 회복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원래 높은 수준을 유지하던 수입증가율이 거의 배로 뛰어 20%선에 이르고 있다는 점이다. 그 결과 무역적자의 확대가 초래된 것이다. 이중 두번째의 동향을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금년 수입동향의 특징은 소비재·자본재·원자재 모든 부문에 걸쳐 수입급증세가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수입급증의 주요원인이 전반적인 내수급증과 수출회복에 있음을 나타낸다.
○폭발적 내수 급증
내수급증은 이미 89년에 뚜렷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주택·건물·도로 등 각종 건설에 대한 수요의 폭발적 증가,소득급증과 민주화로 인한 민간소비 및 정부소비의 급증,노동고가화와 정부지원에 따른 설비투자의 높은 증가율,이러한 모든 것이 수입수요의 급속한 확대를 유발해온 것이다. 또한 작년에는 수출증가율이 3%에 불과했음에도 내수의 급증세에 힘입어 경제성장률이 이미 9%에 달하고 인력난이 보통 심각한 것이 아니었다.
금년에 접어들며 내수의 강세는 그다지 완화되지 않고 지속되었다. 반면 해외로부터의 수출수요가 높은 증가세를 회복했다. 이것이 금년들어 수입증가율이 배증한 주요원인인 것이다.
수출은 해외의 수요와 산업의 국제경쟁력에 의해 결정된다. 수입은 수출과 내수의 규모 및 산업의 국제경쟁력에 의해 결정된다. 국제경쟁력은 산업구조의 효율성,물가와 임금의 수준 및 환율에 의해 결정된다. 한편 물가와 임금은 국내경제의 가동수준과 환율에 의해 결정된다. 국내경제의 가동수준은 총국내생산능력에 대비한 수출과 내수의 규모에 의해 결정된다. 내수의 규모는 우리나라의 소비성향과 투자성향 및 재정통화 정책에 의해 결정된다.
이러한 복잡한 이야기를 차근히 정리하면 수출과 수입 및 무역수지는 결국 해외의 경제동향,그리고 산업효율,소비성향과 투자성향,재정,통화 및 환율정책에 의해 결정된다는 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무역수지 개선대책은 무엇인가.
자금의 무역수지적자는 국내 수요가 국내 공급능력을 초과하고 있음을 반영한다. 그렇다면 올바른 무역적자 대책은 우선 국내수요를 긴축해나가고 중장기적으로는 생산능력을 확대하고 산업효율을 제고시키는데 있다. 환율조정도 있으나,이것은 물가와 임금을 자극하는 단점이 있어 현상황하에서 실효성이 의문시된다.
○시간과 인내 필요
결국 통화와 재정을 긴축적으로 운용하는 가운데 경제구조조정과 산업발전을 꾸준히 추진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노력이 가시적인 국제수지개선을 가져오려면 시간이 걸린다. 인내를 갖고 국내경제의 여건을 개선해 나가야 할 것이다.
국제수지는 정밀 조정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단기간에 조정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단기적인 국제수지관리 목표설정은 숫자조작의 우를 범하게 한다. 수입을 직접적으로 억제하거나 수출을 직접적으로 촉진하는 것은 국내의 수급불균형을 확대시켜 임금과 물가의 불안을 심화시키고 국제경쟁력을 더욱 악화시킬 우려가 있다. 고장난 시계의 두 바늘을 돌린다고 시계가 고쳐지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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