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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르비 「신연방 꿈」물거품 위기/“우크라이나 독립” 국민투표 의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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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반러시아 민족주의의 승리/각 공화국 「홀로서기파」 목소리 커질듯
소 연방으로부터 우크라이나가 완전 독립하는데 절대적인 지지를 보여준 1일 우크라이나 국민투표 결과는 12개 구성공화국으로 조성된 신연방을 창설하려는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노력이 이제 실현 불가능한 일이 돼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3월만해도 우크라이나인들은 소련이 새로운 주권공화국 연방으로 재탄생해야 한다는데 동의,국민투표에서 70%이상의 지지를 표시한바 있다.
그러나 이번 국민투표에서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우크라이나의 완전한 독립에 8할이상의 압도적 지지를 보내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신연방창설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고 있다.
이러한 완전독립요구의 밑바닥에 깔려있는 반러시아적 민족주의와 신연방 참가반대운동은 대통령에 당선된 레오니드 크라프루크 최고회의의장이 협상테이블에 나가지 못하도록 강력한 압력을 가하고 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그동안 기회있을때마다 『우크라이나 없는 신연방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라며 우크라이나의 연방참가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따라서 이번 우크라이나의 독립결정으로 고르바초프 대통령등 연방유지를 원하는 세력은 커다란 타격을 받았음이 분명하다. 또 보리스 옐친 대통령이 이끄는 러시아공화국은 앞으로 신연방창설작업보다 러시아 자체의 국가부흥에 매진하는 쪽으로 나아갈 것으로 보인다.
블라디미르 그리네프 우크라이나 최고회의 부의장을 비롯한 우크라이나 정치지도자들은 취재차 키예프에 온 서방기자들 앞에서 『신연방조약 초안내용은 매우 위험한 것이다. 이는 이미 무너진 연방의 힘과 제도를 다시 일으켜세우려는 시도일 뿐』이라며 우크라이나는 이에 참가할 의사가 없음을 강조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연방조약이 조기체결될 것으로 기대하는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노력과 희망은 지나친 낙관론으로 보인다.
특히 이제 러시아도 연방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현실을 인정하고 또다른 공화국들에 대항하기 위해서라도 독자적으로 홀로 설 준비를 하자는 러시아공화국내 독립파의 목소리가 점차 커질 것으로 보인다.
알렉산드르 루츠코이 러시아공화국 부통령,부르불리스 국가위원회 부의장 등은 『하루빨리 러시아가 소연방의 적법한 계승자임을 선언하고 구연방의 권리와 러시아의 경제·정치·군사주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옐친 대통령은 최근들어 연방없이는 재앙이 초래될 것이라는 연방유지파의 주장으로 기울고 있으나 우크라이나등이 독자군대를 만들고 독자화폐를 발행한다면 더이상 이들의 공세를 좌시할 수만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소연방 제2의 공화국으로 막대한 인구와 경제력을 보유한 우크라이나가 독립을 선포하고 신연방참가를 거부하는 상황에서 그동안 수차 연방조약이 체결되지 않으면 사임하겠다고 위협했던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정치적 장래,그리고 최대공화국인 러시아가 어떤 행동으로 나올지 앞으로 주의깊게 지켜봐야 할 것 같다.<키예프=김석환특파원>
◎우크라이나민족/17세기 제정러시아에 편입 탄압받아
이번 선거를 통해 거듭 확인된 우크라이나인들의 드높은 독립열기는 경제적 이유 못지않게 뿌리깊은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다.
우크라이나인들은 러시아인들과 마찬가지로 슬라브족에 속하며 언어 또한 비슷하다.
우크라이나인들은 9세기중엽 키예프를 중심으로 고대러시아의 원조격인 키예프루시를 성립시켜 찬란한 문화를 꽃피우면서 항상 슬라브계 최고민족이라는 자긍심을 가져왔다.
그러나 슬라브족의 주무대가 북부 노브고로트공국을 거쳐 모스크바공국으로 옮아가면서 우크라이나인들은 차츰 피지배민족으로 전락했다.
특히 1654년 우크라이나가 모스크바중심의 제정러시아에 강제편입된뒤 우크라이나인들은 강한 독립의식으로 인해 「믿지못할 변방민족」으로 낙인찍혀 무자비한 탄압대상이 됐으면서도 풍부한 농산물 때문에 가장 무거운 세금을 부담해야 했다.
따라서 우크라이나인들은 러시아인들을 먹여살리면서도 핍박만 당한다는 피해의식속에 3백년 가까이 시달리다 1917년 볼셰비키혁명이 일어나자 총궐기해 무장독립투쟁을 벌였으나 이 역시 적군에 의해 철저히 짓밟혔으며 그 대가로 수백만명의 우크라이나인들이 시베리아등 오지로 강제 이주당하기도 했다.<정태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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