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프리즘] 인천 유괴 살인범의 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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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어떻게 저런 잔인한 짓을….”

인천 송도 국제도시에서 벌어진 초등생 유괴 범행을 보며 대부분이 느꼈을 심정이다. 유괴범은 여덟 살밖에 안 된 아이를 납치한 뒤 “살려 달라”고 애원하는데도 산 채로 부대에 담아 물에 던져 숨지게 했다. 이번 사건은 납치 발생 하루가 지나면 피해자의 생존 가능성이 현격히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를 다시 증명해 준다.

이 사건이 언론의 조명을 받은 데 비해 2005년 12월 경기도 이천에서 일어난 유괴 사건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30대 두 명이 학원 수업을 마치고 귀가하던 초등 여학생을 차량으로 납치해 부모에게 협박 전화를 걸어 현금 700만원을 인출해 도주한 사건이다. 다행히 범인들은 몸값을 받아 챙긴 뒤 여학생을 부모에게 돌려보냈다. 경찰은 사건 발생 일 년여 만인 1월 범인을 검거했다.

두 사건에는 공통점이 있다. 초등생을 인질로 삼아 몸값을 요구했으며, 미제로 남지 않고 범인이 붙잡혔다는 점이다. 하지만 차이점도 뚜렷하다. 인천 사건은 인질이 숨진 반면 이천 사건에선 여학생이 무사했다는 것이다.

두 사건의 범인들은 왜 서로 다른 선택을 했을까. 범행 동기가 극명한 차이를 보인 것으로 생각된다. 대부분의 유괴 동기는 돈이다. 이천 사건의 경우도 돈이 유일한 범행 동기였다. 단순했던 셈이다. 하지만 인천 유괴범의 마음속에는 다른 갈망이 도사리고 있었다.

‘돈을 받아내야 한다. 그리고 꼭 완전 범죄를 해야 한다.’

전과 3범인 박씨는 이번에 검거되면 인생의 모든 걸 잃게 될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이런 절박감이 인면수심의 잔인함을 불렀다. 범인은 애초에 인질을 살려서 돌려보낼 생각이 없었다. 처음부터 자신의 얼굴을 본 아이의 음성을 녹음한 뒤 그 아이를 없애는 계획을 세웠을 것이다.

사람들은 기대 수준이 너무 높은 경우 현실적인 대안을 제쳐두고 위험을 감수하는(risk-taking) 행위를 하게 된다. 돈을 크게 잃은 주식 투자자가 승산이 적은 상황에서도 대박을 꿈꾸며 전 재산을 투자하는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다. 비이성적인 열망이 정상적인 사고 대신 극단적인 선택을 하도록 한다. 인생의 막판에 몰린 인천 유괴범도 강도ㆍ절도 등 다른 범죄보다 유괴의 성공 확률이 높다고 착각했을 것이다. 인질이 어리고 힘이 없어 손쉽게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위험 감수 행위에는 양심이나 죄책감이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

범인의 생각과 달리 아동 유괴범의 검거율은 매우 높다. 아동이 피해자인 범죄의 경우 사회가 모든 희생을 치르고라도 매달리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은 후손을 세상에 보존할 진화론적인 생존 본능을 갖고 태어난다. 범인의 가장 큰 실수는 바로 인류의 생존 본능에 도전했다는 점이다. 참으로 딱한 노릇이다.

이수정 교수 (경기대·범죄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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