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과 나침반] 새로운 출발…항상 初心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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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MBC가 최종합격자를 발표함으로써 올해 지상파 방송 3사의 신입사원 선발이 모두 끝났다. 여의도 방송가의 가을걷이가 마무리된 셈이다. 입사통지서를 받아든 젊은이들은 세상을 다 거머쥔 기분일 것이다.

신입사원의 포부와 신랑 신부의 다짐은 서로 닮은꼴이다. 그들은 만인의 축복 속에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평생 동안 고락(苦樂)을 함께한다는 말이 성혼선언문에 들어가는데 요즘 젊은이들 중에는 동고동락을 '동거동락'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더러 있다. 살면서 즐거움(樂)만 함께하려고 하지 괴로움(苦)은 함께 나누려고 하지 않는 커플들이 늘어가는 추세 때문인 듯하다.

얼마 전 힙합그룹 DJ DOC의 리드보컬 김창렬이 내게 주례를 부탁했다. '내 나이가 몇인데'하면 금방이라도 리듬을 타며 '그깟 나이 무슨 상관이에요'라고 노래로 되물을 것 같았다. 'DOC와 춤을'에 실제로 그런 가사가 나온다. '대중문화의 이해'라는 수업을 듣는 학생이라면 주제가로 추천하고 싶다는 생각을 오래 전부터 했던 노래다. 이 노래는 '젓가락질 잘해야만 밥을 먹나요'라는 도발적 질문으로 시작된다. 곧이어 '잘못해도 서툴러도 밥 잘 먹어요'라는 반항적인 대답이 나온다. 세상과의 불화는 쉽게 해소되진 않는다. '주위사람 내가 밥 먹을 때 너 밥상에 불만 있냐고 한마디씩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제안한다. '사람들 눈 의식하지 말자. 그래야 즐기면서 살아갈 수 있다. 내 개성에 사는 세상이니 자신을 만들어보자'라고.

이 흥겨운 권유는 방송사 신입PD들에게도 유효적절하다. 처음엔 의욕적으로 개성을 발하다가도 얼마 지나지 않아 주위 눈치 살피며 모두 비슷하게 변해버린 선배들을 자주 보게 될 것이다. 반성도 안 하고, 그렇다고 반항도 안 하는 선배들에게 '시청자에게 불만 있냐'고 묻는 건 그들을 '두 번 죽이는' 일일지 모른다.

이처럼 통렬한 노래를 부른 김창렬은 두 개의 청첩장을 준비했다고 한다. 하나는 나이트클럽 광고 전단을 방불케 하는 희한한 양식이다. 신랑.신부 커플을 비롯해 주례 및 사회(개그맨 김제동) 등의 사진이 야간업소 출연진을 알리는 식으로 소개돼 있다. 과연 DJ DOC답다. 그런데 한편으로 그는 전혀 다른 포맷의 청첩장을 더 준비했다. '실험적'이고 '오락적'인 청첩장을 불편하게 여길 사람들에게 보낼 '고전적'이고 '교양적'인 청첩장이다. 그도 벌써 서른살이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게 아니라 남의 기분을 배려할 줄 알게 된 것이다.

그를 위한 주례사를 준비하다 보니 달콤한 말만 하는 게 능사는 아니지 싶다. 주례사에 빠질 수 없는 게 권면(勸勉)이다. 알아듣도록 타일러 힘쓰게 한다는 뜻이다. 결혼의 문에 들어서는 신랑.신부에게, 이제 막 방송인의 첫발을 내딘 신입 방송인들에게 초심을 지키라고 당부한다. 세월이 흐른 뒤 처음 가졌던 의욕이 분해되어 의심과 욕심으로 갈라서지 않기를 바란다.

주철환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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