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년만의 선친묘소 참배(촛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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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그토록 귀여워하시던 소녀 둘째딸이 반세기만에 아버지앞에 섰습니다. 어릴적 버릇대로 아버지품에 안기고 싶지만 이렇게 싸늘한….』
분단이후 처음으로 남북한 여성이 한자리에 모인 「아시아의 평화와 여성의 역할」토론회에 참석키 위해 서울에온 몽양 여운형선생의 둘째딸 여연구 북측대표(66)는 25일 오후 부친의 서울 우이동 묘소를 44년만에 처음 참배하면서 말을 잇지 못한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46년 이화여대 재학중 몽양의 친공성향 때문에 월북한 것으로 알려진 여대표는 47년 7월 암살당한 선친에 대한 애끓는 그리움으로 몸부림치고 있었다.
『아버지,이제 불효자식이 그렇게 좋아하시던 꽃을 드리오니 나라가 하나되는 그날 동지를 앞세우고 다시 찾아뵐때까지 고이 잠드소서.』
몽양의 대형 영정 앞에 흰국화를 바친 여대표는 45분간의 분향이 끝나가자 더욱 설움에 북받친듯 몸을 떨었다.
「가장 사랑하시던 따님이 민족의 한이 서린 휴전선을 넘어 이곳에 왔습니다. 이제 원수를 용서하시고 마음의 평화를 누리소서.」
추도사가 낭독되는 동안에도 육순을 넘긴 여대표는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 모를 선친묘소 앞에서 더욱 애끊는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남쪽의 가장 가까운 혈육인 사촌동생 명구씨(65·의학박사)는 긴 이별과 짧은 만남이 못내 아쉬운듯 누이를 부둥켜안은채 눈시울을 적시고 있었다.
비록 「조선이 낳은 김일성장군…」「조선의 첫 빨찌산 김장군…」 등 선전성 발언에다 김일성 명의로 된 조화를 내놓아 남측 관계자들과 옥신각신한 해프닝을 벌인 것이 옥에 티이긴 했으나 여대표의 이날 묘소참배는 자식된 도리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분단조국의 비극을 온몸으로 느끼게 했다.<고대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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