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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Movie TV] 최성국 '망가짐'이 내 생존전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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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개봉하는 '낭만자객'주연 최성국(33)과의 인터뷰는 술 이야기로 시작됐다. 그는 다소 부석부석해 보였다. 간밤에 마신 술이 아직 덜 깼다고 했다. 술을 마신 이유는 엉뚱하게도 '낭만자객'의 관람 등급 때문에 속이 상해서라고 했다. "15세 이상 관람가를 겨냥해서 욕설 장면도 많이 자제했는데 18세가 나왔어요. 감독님 이하 전 스태프가 실망도 되고 걱정도 돼서 어제 좀 많이 마셨습니다."

'낭만자객'은 최성국이 지난해 '색즉시공'에 이어 '코미디에 관한 한 동물적 감각을 지녔다'는 윤제균 감독과 두번째로 호흡을 맞춘 영화다. 처녀귀신들의 원한을 풀어주기는커녕 실수만 연발하는 엉터리 자객들의 소동을 그린 이 영화에서 그는 허풍쟁이 자객 두목 예랑을 연기했다.

걱정은 이어졌다. "'색즉시공'이 워낙 웃음의 강도가 세서 그런지 '낭만자객'은 코미디가 좀 약해보여요. 남매 간의 비극이 들어가면서 좀 헐거워진 느낌도 들고요. '낭만자객'이 잘되면 '낭만자객+색즉시공'인 '낭만 18세'를 만들자고 감독님과 얘기했었는데…."

"흥행 걱정은 대개 영화사의 몫 아니냐"고 하자 정색을 한다. "전 제가 하는 작품은 무조건 잘돼야 된다고 생각해요. 영화 속에 최성국은 안 보여도 돼요. 영화가 잘되면 그만이죠. '색즉시공'에서도 임창정.하지원씨 다음으로 제가 세번째 주연인데 정작 10신밖에 나오지 않거든요. 하지만 4백20만명 동원하니까 관객들은 제 이름을 기억하잖아요."

'열심히 연기한 것으로 만족한다'는 여느 주연급 배우들의 개봉 전 소감과는 사뭇 달랐다. 그래서 더 인상적이었다. 한시간반 남짓 이야기를 나눠보니 이런 그의 면모는 벼락출세가 아닌 자수성가한 배우 특유의 찰진 오기와 녹록지 않은 근성에서 비롯된 것임을 눈치챌 수 있었다.

서울예대 연극과 졸업 후 1995년 SBS 공채로 데뷔, 올해로 8년째다. 그러나 널리 얼굴을 알린 건 지난해 시트콤 '대박가족'과 '색즉시공'이 히트하면서부터다. 선배 집에 얹혀 사는 짠돌이 승무원은 '대박가족'의 '가족'이 아니었음에도 가족 구성원보다 더 높은 인기를 끌었다. 여기에 고무 인형을 붙들고 용(?)을 쓰는 '색즉시공'의 나이 많은 차력부 주장 역이 더해지면서 "외모나 말투는 점잖고(?) 진지한데 하는 짓은 정말 웃긴다"는 평가가 굳어졌다. 그게 불과 1년 새의 일이다.

그의 무명 시절은 한 단어로 하면 '파란만장'이었다. "공채 동기 중에 매니지먼트사에서 거들떠보지 않은 사람은 저밖에 없을 정도였어요. 데뷔 후에 1년 동안 60여편에 단역으로 출연했죠. 한번씩 출연하면 수당이 8만원씩 나왔거든요." 이름만 대면 알만한 영화 주연으로 정해졌다가 밀리는 통에 1년반 가량을 수중에 동전 한 푼 없이 놀고 지낸 적도 있었다. 드라마 녹화 하루 전날에 '정말 미안한데 주인공이 바뀌었다'는 연락을 받은 적도 몇차례였다.

"'대박가족'도 4회부터 합류를 했고 주연급은 더더군다나 아니었어요. 담당 PD에게 '제가 조미령씨랑 같이 나오는 장면에서 시청률 그래프가 뛰면 저를 위해 세트를 지어달라'고 제안을 했죠. 말투도 다다다다 속사포처럼 쏘아붙이는 전형적인 시트콤 말투 말고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 독일 병정처럼 느리고 딱딱하게 갔죠. 처음엔 선배님들한테 '너 사극하냐?'는 핀잔도 많이 들었어요."

그럴수록 오기는 충천했다. "날 몰라준 사람들을 후회하도록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죠. 제가 나오면 왜 재미있는 줄 아세요? 스타들은 가급적 망가지지 않으려고 하지만 전 살아남기 위해서 망가졌거든요. 그렇게 해서 작품을 살리면 결국은 제가 돋보일 수 있으니까요."

그는 감독에게 애드리브(즉흥 연기)를 많이 제안하는 편이다. '낭만자객'의 경우 '해피 투게더'에서 힌트를 얻어 막내 자객 요이(김민종)와 프렌치 키스를 나누는 설정, 큰 것(!)을 참지 못해 안절부절 못하다 "제발 ×좀 싸게 해다오, 가볍게 가고 싶다"고 절규하는 장면, 마침내 볼일을 다 보고 노끈으로 뒤처리를 하는 대목 등이 그의 제안에서 비롯됐다.

"코미디라고 해서 웃겨야겠다고 작심한 적은 없어요. 울려도 재미, 웃겨도 재미, 감동을 줘도 재미, 결국 문제는 재미를 주느냐인 것 같아요. 앞으로도 많은 이들이 찾아주고 좋아해주는 그런 작품을 선보이고 싶습니다."

글=기선민 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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