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up] "원칙이 푸조 살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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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프랑스 푸조-시트로앵 그룹은 연간 370만 대의 자동차를 판다. 세계 자동차업계 순위는 현대.기아차그룹보다 한 단계 높은 6위. 유럽에선 폴크스바겐 그룹에 이어 2위다. 프레데리크 생 주르(57.사진) 푸조 사장을 9일(현지시간) 파리 본사에서 만났다. 그는 노사관계 얘기부터 꺼냈다. 주르 사장은 "정부가 일관된 노사정책을 펴야 생산 현장에 평화가 온다"며 "정부는 기업이 법을 제대로 지키는지 감시할 뿐 아니라 노조가 불법파업을 할 경우에는 법에 따라 엄정하게 처리하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오너 일가와 최고경영진의 역할 분담은.

"푸조 패밀리는 1950년 이후 경영에 간섭하지 않는다. 직계 4세인 크리스티앙 푸조(54)가 홍보책임자를 맡고 있는 정도다. 오너 일가는 이사회를 통해 경영진을 선임하고 대규모 투자를 결정한다. 회사가 어려워지면 오너 일가가 추가 투자를 하는 등 든든한 방패 역할을 해준다. 앞으로도 푸조 일가가 최고경영자(CEO)를 맡는 일은 없을 것이다."

-푸조는 90년대 말까지 꽤 심한 노사 분규를 겪었는데.

"정부가 노사에 일관된 기준을 엄격히 적용해 2000년 이후 노사 관계는 매우 안정됐다. 복수 노조인 푸조는 매년 전체 종업원(15만 명)의 4% 정도만 파업에 참가한다. 노조는 파업해도 법은 꼭 준수하고 경영진도 노동법을 철저히 지킨다. 정부가 노조의 불법에 대해 엄단하기 때문에 노조가 탈법 쟁의를 벌일 엄두를 못 낸다. 내가 사장으로 재임한 9년간 푸조의 자동차 판매량은 60% 늘었다. 이런 발전에는 안정적인 노사관계가 큰 역할을 했다."

-푸조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디젤 세단을 팔아 성공했는데, 앞으로 계획은.

"한국 소비자들은 푸조 디젤차가 가솔린차보다 힘(토크)이 좋은 데다 소음.진동이 적어 만족해한다. 디젤차 판매를 계속 늘릴 것이다. 디젤은 이산화탄소 배출이 적은 친환경차량이다. 한국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2010년 일본에 디젤 세단을 팔 계획이다."

-긴 오버행(앞바퀴-범퍼 거리)과 헤드라이트 등 디자인이 파격적인데.

"푸조의 모든 차는 앞모습이 비슷하다. 멀리서 봐도 '아 저 차는 푸조다'라고 느낄 수 있다. 독일 차, 일본 차와는 확연하게 차별화할 계획이다. 앞으로도 프랑스의 여유와 낭만이 깃든 고유의 디자인을 적용할 것이다."

-공무원을 하다 기업에 들어왔는데.

"공무원보다 경영자 생활이 힘들지만 더 재미있다. 공무원은 경쟁도 적고 의사 결정에 따른 책임도 거의 없다. 안정적인 직업이다. 푸조 사장은 5년 후 나올 신차의 디자인과 신기술을 결정해야 하고 시장에서 실적으로 평가받는다. 국립행정학교(ENA)에서 배운 수많은 지식이 기업 경영에는 거의 쓸모 없었다(웃음)."

-해외 시장 공략 계획은.

"푸조는 90년대 초 미국에서 철수했다. 미국에 다시 진출할지를 올 10월께 결정할 것이다. 인도는 저가 차 위주라 진출할 계획이 없다. 중국은 2005년에 진출해 지난해에는 판매가 60%나 늘었다. 러시아는 내년에 10만 대 규모의 공장을 짓는다."

파리=김태진 기자

◆푸조와 주르 사장=푸조 일가는 1810년 가정용 후추 분쇄기와 재봉틀로 회사를 차렸다. 다임러벤츠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1895년부터 자동차 사업을 시작했다. 주르 사장은 엘리트 코스인 파리정치대학 경제학과와 국립행정학교를 졸업했다. 1975년 재정경제부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해 국회의장실.예산처에서 근무했다. 86년 푸조로 옮겨 최고재무책임자(CFO)를 거쳐 98년 사장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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