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예술은 사치가 아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지난 여름 소련에 갔을 때 모스크바 전철역들의 웅장함과 호화찬란함에 무척 놀랐다. 그러나 그 아름답고 예술적인 역사들은 그곳을 이용하는 생활고에 찌든 군중들과 심한 부조화를 이루고있었다. 사회주의 국가에 서민중의 교통수단인 지하철역사를 궁전처럼 짓는다는 것은 당연한 일일수 있다. 그러나 교통지옥에 시달리는 모스크바시민들에게 그 화려한 지하철역들은 국가주도경제가 빚은 과소비로 느껴지지 않을까 생각이 되었다.
나는 가끔, 어떤 불행한 우연으로 우리나라가 사회주의국가가 된다면 예술가들은 물론 나같은 인문과학자들도 잉여인간이 되어버리지 않을까 하고 괜한 걱정을 해보는 일이 있다. 「모든 사람에게서 그의 능력만큼, 모든 사람에게 그의 필요만큼」이라는 공산주의 구호처럼 힘없고 억눌린 민중에게 매력적인 구호가 또 있을까. 그러나 전체주의 사회가 나에게서 요구하는 능력은 내가 가장 발현하고 싶은 능력이 아닐 경우가 많을 것이고, 전체주의 사회가 나의 필요라고 생각하는 것은 내가 나의 필요라고 생각하는 것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기 쉬울 것이다. 그러니까 나처럼 생존에 필수적인 재화의 생산에 관계하지 않는 사람은 생존권을 보장받기 어렵지 않을까.
그런데 레닌그라드(이제는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주 박물관을 관람하러갔을 때, 나치의 소련 침공당시 그 박물관의 소장품들을 소개시키기 위해 박물관관리들과 민간인 자원대가 벌인 헌신적인 노력에 대해 듣고 아이러니와 함께 감동을 느꼈다. 아이러니는 그곳의 미술품들이 대개 제정러시아의 황제들이 「민중을 착취한」 재화로 수집한 것인데 공산국가인민들이 그것을 목숨을 희생해가면서 지켰다는데서, 감동은 어떠한 이데올로기도 예술에 대한 사랑을 말살 시킬수는 없다는 사실에서 느껴진 것이다.
예술없이 살수 있는 개인은 있을수 있어도 예술이 말살된 사회는 발전할수 없는것은 물론 오래 존속할수조차 없는 것이다. 이는 인간이 동물적인 삶에 머무르지 말고 인간답게 발전하라는 신의 섭리이리라. 금년 벽두부터 우리 예술계는 참담한 몸살을 앓고 있다. 예술인들은 자본주의사회에서조차 배척과 배격을 당하지 않도록 새로운 각오를 할 필요가 있겠고 일반인들은 예술을 사치성 소비재로 생각하는 사고방식을 버려 예술의 타락을 함께 막도록 노력해야 되겠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