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진산의톡톡히어로] 어른보다 속 깊은 소공자·소공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9면

'비밀의 화원'의 작가인 프랜시스 호즈슨 버넷이 탄생시킨 매력적인 두 아이, 세드릭과 세라는 사실 일본어판 중역에서 비롯된 번역제목인 '소공녀'와 '소공자'라는 이름으로 더 친숙하다.

세드릭은 귀족혈통인 아버지와 평민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다. 허락받지 못한 결혼을 한 탓에 아버지는 의절을 당했는데, 덕분에 세드릭은 자유로운 평민의 아이로 자랄 수 있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백작 가문으로 불려가게 되고, 느닷없이 '폰틀로이 경'으로 살게 되는 것이다. '신데렐라 이야기를 다룬 현대의 소설 중 가장 뛰어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세드릭 이야기'(햇살과 나무꾼 옮김, 시공주니어)는 '상승'의 동화다.

반면 세라 크루는 '추락'의 동화다. '민친 선생의 여학교에서 일어난 일: 세라 크루'라는 제목으로 잡지에 연재된 짧은 소설에서 출발해 캐릭터와 이야기가 보강되면서 완성된 '세라 이야기'(햇살과 나무꾼 옮김, 시공주니어)에서 부유한 아버지를 둔 세라는 기숙여학교의 공주로 군림하다가 아버지의 사망과 파산으로 하루아침에 하녀 신세가 된다.

세드릭과 세라의 이야기에는 용도 마녀도 등장하지 않지만 그보다 훨씬 비현실적인 두 캐릭터가 나온다. 갑작스러운 신데렐라의 상승 속에서도 세드릭의 사랑스러운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세라 역시 마찬가지다. 좌절을 천만번쯤 해도 모자라지 않을 상황에서도, 그녀는 변하지 않는다.

지금은 비록 처지가 바뀌어 누더기 옷을 걸치고 있지만, 세라는 자신을 여전히 공주라고 생각한다. "아무도 알아주는 이 없을 때도 공주로 지낼 수 있다는 게 더 훌륭한 일이야."

어쩌면 이렇게나 침착하고, 사려 깊고, 인내심 강할 수가! 원래 아이란 좌충우돌에, 철이 없고, 참을성이 없어서 어린아이가 아닌가. 세상 아이들이 모두 세라와 세드릭 같다면 어른들은 대체 무슨 낯으로 살 수 있을까? 이 두 캐릭터가 너무 이상적인 까닭에, 버넷의 동화는 종종 지나치게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을 받은 모양이다. 하지만 매력적인 캐릭터라는 것이 꼭 현실에 발을 붙이고 있어야만 하는 건 아니다. 사람들은 땅에 뿌리를 내린 꽃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허공에서 빛나는 별빛을 좋아하기도 하니까 말이다. 게다가 비현실적일지언정 이 두 아이는 '정말로 그랬으면'하는 소망을 한껏 이루어주고 있지 않은가.

진 산 <작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