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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지 말고 놓지 말고 끝까지 붙어버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이코노미스트 ‘미디어는 사회의 거울이다’라는 말이 있다. ‘하얀거탑’이라는 드라마에 많은 사람이 열광하는 이유 중 하나는 대학병원의 외과 과장 자리를 두고 벌이는 ‘싸움’이 직장인의 공감을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장준혁:“최도영, 내 목숨도 달렸어.”

이런 ‘싸움’에서 이겨야만 조직에서 어깨를 펼 수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상대방을 떨어뜨리지 않으면 내가 떨어지는 게 지금의 세태다. 아니 지금이 아니라 이것은 동서고금의 진리다.

최도영 : “야, 장준혁! 환자의 목숨이 달렸어. ”

장준혁 : “최도영, 내 목숨도 달렸어. ”

환자를 치료하는 것이 의사의 도리요, 본분이라고 생각하며 권력이나 돈, 명예에 대한 욕심이 없어 윗사람에게 아부하지 않는 최도영(이선균 분). 그는 언제나 자신의 판단을 그대로 전달한다. 때문에 조직 안에서 윗사람 눈에 들기는커녕 오히려 미운 털이 박힌다.

“과장은 억지로 되는 게 아니라 열심히 하다 보면 저절로 되는 거 아냐? 안 돼도 내 일에 충실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해”라고 말하는 그. 정신없이 바쁜 병원 시스템속에서도 환자를 대할 때면 언제나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검사를 더 해봐야 할 것 같은데요”라고 말하는 탓에 더 이상 ‘천사표’ 의사로 보여지는 게 아니라 조직 내 생리적 이치로 봤을 때는 답답한 ‘미련 곰탱이’로 보여진다.

로비에 ‘줄타기’까지…

‘거짓 증언’으로 좀 도와달라는 대학동기 장준혁의 청을 한마디로 거절해 우정에도 금이 가게 된다. 이런 그에게 시청자들은 비현실적이고 감상적인 인물이라 평한다. 최도영과는 정반대로 조직에서 살아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력을 차지하려는 장준혁(김명민 분).

가난한 의대생 출신에서 더 높은 곳에 올라가기 위해 부잣집 딸과 정략결혼까지 한 그는 장인의 힘을 업고서라도 자신의 야망을 실현하려 하는 ‘나쁜 남자’로 볼 수 있다. 그는 조직 안에서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윗사람과 아랫사람 관리를 철저하게 한다.

윗사람에게는 로비로 ‘줄타기’를 시도하고 아랫사람에게는 자신에게 복종하도록 채찍을 능수능란하게 주는 전략가다. 권력 획득을 위해서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덤벼드는 그. 때로는 비인간적이며 때로는 굴욕적 모습에 오히려 시청자들은 그를 현실적이고 인간적이라 생각한다.

“‘어떻게’라는 생각을 버려. 조건 없어. 무조건이야. 쉬지 말고 놓지 말고 끝까지 붙어. 그럼 결국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어.”

▶최도영:“야, 장준혁! 환자의 목숨이 달렸어.”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한 그의 열정은 누구보다 뜨겁다. 하지만, 그 방법은? 드라마 속에서 조직 내 명예와 권력을 얻으려면 로비를 통한 줄타기가 필요 조건으로 나온다.

대학병원 의사 조직에서 그 정도의 로비가 정말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 어떤 직장에서 로비를 하지 않거나 줄타기로 권력을 탐하는 사람이 없는 ‘깨끗한’ 곳이 과연 있을까?

“회사 들어가면 줄을 잘 타야 한다” 혹은 “줄 잘못 타면 회사 있을 동안 계속 잘릴 걱정이다.” 이런 말들은 그냥 생겨난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학연이나 지연으로 맺어지거나, 적어도 오너나 조직 내 권력자의 줄을 잘 타지 못하면 조직에서 살아남기 힘들다. 최도영처럼 열심히 노력하지만 본업에만 충실한 사람은 결코 조직에서 힘을 갖는 권력자가 될 수 없다는 이치와 일맥상통한다.

이 드라마에서 보여주듯 직장인이 퇴출당하지 않고 조직에서 살아남아 성공하려면? 그렇다. 조직 내 누가 권력자인지를 잘 파악해 줄타기를 잘 해야 한다. 그리고 직장 생활에서 줄타기를 싫어해 회피하는 직장인조차 권력 위쪽으로 올라가면 저절로 줄이 세워져 있다는 사실을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학연이나 지연 혹은 업무상 같은 라인에 근무한 경험이 서로 직장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지독하게 얽매여 있는 거대한 권력관계 양상을 보이는 현실에 적용한 것이다.

여러분의 선택은?

야비하지만 나 자신이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이 터뜨리고 마는 무지막지한 처세술, 이로 인해 자신에게 다가오는 직장에서의 성공. 이것이 과연 ‘개인의 양심이 허락하느냐’ 하는 것은 사회적 문제가 아닌 개인적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오히려 직장 구성원은 ‘내가 이 직장에 얼마나 더 오래 버틸 수 있을까’ ‘어느 직급까지 승진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를 더욱 중시한다.

자신의 성공을 위한 처세술의 합리화는 더 이상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할 수 없다. 이는 명예를 중시해 남에게 보여주려는 문화, 물질주의 등에 기초한 사회 풍토 한가운데 기업(직장)이 있는 데 이유를 둘 수 있다.

하지만 직장에서의 권력, 그 모든 것을 가지면, 가지기 전에 소중하게 품어왔던 달콤한 꿈을 잃고 마는 것을 드라마에서 한번 상기시켜준다. 열정과 노력으로 열심히 일하지만 대학 시절 품어왔던 순수한 꿈을 떠나 언제 어디서나 머리 아프도록 신경써야 하고, 싸우고, 뛰어다녀야 한다. 성공, 그 모든 것이 완벽한 성공이 될 수 없는 아이로니컬한 상황을 드라마는 보여준다.

‘하얀거탑’에서는 아직 장준혁의 ‘성공’이 확정지어진 것인지 알 수 없다. 다시 말해 드라마의 끝을 볼 수 없는 이상 권력과 명예를 얻기 위한 숱한 로비, 그리고 줄타기의 방법이 그의 성공에 결정적 효력을 미쳤는지 알 수 없다. 결과가 나와봐야 알 일이지만 드라마가 중반부를 넘어선 지금 야망에 불타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앞으로 도약하려고 하는 그는 큰 시련을 맞고 있다.

권력과 명예, 돈이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나가는 장준혁, 가치와 소신을 지키기 위해 매사에 열심히 일하는 최도영은 대학 동기지만 서로 갈등할 것 같은 구도에서 우리는 어느 편에 설 것인가? 직장이라는 조직 속에서 장준혁이라는 인물이 성공하리라는 확신이 있지만, 그래도 아직 가슴에는 최도영이라는 인물이 우리 사회에서 ‘먹혔으면’ 하는 작은 기대를 한다.

하지만 많은 시청자는 자신의 직장과 비교하면서 장준혁이라는 인물에 공감한다. 장준혁이 하는 일들이 윤리적으로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면서도 최도영이 답답하게 느껴지는 이중성. 이는 우리 사회가 지닌 현실이기 때문에 욕 할 일도 아니다.

한국 남자라면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한번쯤 직·간접적으로 경험해 보는 조직의 정치 관계. ‘하얀거탑’은 그들에게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인지 묻고 있다. 최도영처럼 사회적 지위나 명예는 얻지 못할 수 있지만 소신껏 본업에 충성을 다해 죄책감 느끼지 않는 깨끗한 직장 생활을 할 것인지, 혹은 장준혁처럼 직장에서 드높은 명예와 강력한 권력을 꿰찰 수 있지만 정치라는 구차한 세계에 몸을 담아야 할지 말이다.

이임광·이영민 기자 [llkhkb@joins.com]

[시리즈 목차]

[직장에서 안 잘리려면①] 안 잘리려면 계략을 짜라
[직장에서 안 잘리려면②] 소통하고 단련하고 경계하라
[직장에서 안 잘리려면③] 잔머리·무임승차는 퇴출 1호
[직장에서 안 잘리려면④] "쉬지 말고 놓지 말고 끝까지 붙어버려"
[직장에서 안 잘리려면⑤] 通하라, 아니면‘척’이라도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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