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동독무기 처분에 골머리/독일(지구촌화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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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고철” 보관비 엄청/50만 병력분/군함은 난민 숙소로… 테러이용 불안도
지난해 10월3일 독일통일과 함께 구동독 국가인민군(NVA)으로부터 인수한 무기 처리문제를 놓고 독일정부가 골치를 앓고 있다.
마음대로 팔 수도 없는데다 고철로 보관하든 분해하든 똑같이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구동독의 병력은 18만명이었으나 이들의 장비는 통상의 50만병력분에 해당하는 엄청난 양이다.
중요한 것만 따져도 소련제 T­72형 탱크 5백49대등 탱크 2천2백29대,MIG29전투기 24대등 항공기 4백50대,전함 80여척,각종 장갑차량 1만여대 등이 있다.
이밖에 개인화기 1백20만정,수송차량 10만대,각종 탄약 30만t등도 통일과 함께 통일독일군에 이관됐다.
이들 무기는 시가로 따져 자그마치 5백억마르크(약 21조원)어치에 달하는 양이다.
그러나 이들 장비중 현재 독일연방군이 사용하고 있는 것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수송차량과 개인화기의 일부 및 최신예 소련제 MIG29전투기 24대,장갑차 7백60대 등이 고작이다.
독일은 지난해 11월 체결된 유럽재래식무기 감축협정에 따라 구 서독군의 무기자체도 감축해야 하는 형편인데다 대부분이 소련제인 이 무기들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규격에 맞지 않아 대외판매도 여의치 않다.
지금까지 상륙정과 의료선 등 50척의 함정이 개인이나 공공단체에 판매됐는데 이들은 대부분 난민들을 위한 숙소로 개조돼 사용되고 있으며 일부 수집가들에게 쾌속정등이 판매되기도 했다.
이밖에 핀란드에 8천5백만마르크어치의 비전투용 장비가 판매됐고 불가리아에 트럭 2백대,의복 4백t 및 다량의 의료장비가 인도적 차원에서 무료 지원됐다. 또한 최근 소련을 방문한 테오 바이겔 독일 재무장관은 트럭 8천대를 무료로 지원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나머지 전함·탱크·항공기 등 대부분의 전투장비는 「고철」로 보관되고 있다. 물론 폴란드·헝가리 등 구바르샤바조약기구 국가들이나 제3세계국가들이 이들 장비에 대한 구매의사를 적극 표시하고 있지만 독일 국방부와 경제부는 이러한 전투장비의 판매 및 비전투장비의 전투목적 판매를 금지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지난번 걸프전때 이라크에 독일기업들이 군사장비를 판매한 사실이 밝혀져 국제적으로 곤욕을 치른데다가 사회주의권의 붕괴후 우후죽순처럼 민족주의가 대두하고 있는 시점에서 이들에게 무기를 판매한다는 것은 독일이 국제평화를 해친다는 비난을 받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들 장비는 구동독 50여개지역에 집합돼 해체의 날만 기다리고 있다.
그렇지만 이들 장비가 가공할 살상무기인 만큼 삼엄한 경비속에 보관되고 있어 보관에도 많은 경비가 소요되고 있다.
「무기공동묘지」로 불리는 이들 전투장비의 집합장소로 대표적인 곳은 탱크 1천7백대가 질서정연히 줄지어 모여있는 뢰바우와 항공기 4백여대가 2열횡대로 줄지어있는 드레비츠 공군기지,그리고 함정의 대부분이 모여있는 페네뮌데항 등이다.
이들 장비를 해체하는 데는 수십억마르크가 소요되고 기간도 10년이상 걸린다고 이들 장비의 처분을 담당하고 있는 국영 페베크사는 밝히고 있다.
특히 30만t에 달하는 각종 탄약 및 포탄은 환경오염 때문에 폭파시키지 않고 일일이 분해,화약을 특수소각로에서 소각해야 하기 때문에 해체에만도 15억마르크가 드는 것으로 페베크사의 프르치코프스키 사장은 밝히고 있다.
이처럼 장비를 보관하거나 판매 또는 해체하는 것보다도 독일정부가 내심 더욱 걱정하는 것은 구동독군 흡수과정에서 상당수의 장비가 행방불명된 사실이 밝혀짐에 따라 이들 무기가 행여 적군파 등 테러리스트의 손에 넘어가지나 않았나 하는 점이다.
실제로 얼마전 함부르크에서 구동독군 수류탄 80발과 탱크탄 12발을 팔려던 21세의 한 청년이 체포된데다 나토군의 탄약으로도 발사가능한 「비거 940」이라는 칼라시니코프소총 개량형 자동화기 6만정중 3만정이 행방불명된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베를린=유재식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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