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잘 내고 고용도 창출 … 진짜 중국 기업이 돼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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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판 장학퀴즈인 TV 프로그램 ‘SK 좡위안방(狀元榜)’. 중국에 SK를 알리는 1등 공신으로 SK그룹이 2000년부터 꾸준히 후원하고 있다. 이처럼 지속적인 ‘현지 밀착형’ 투자를 해야 중국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중국 국민에게 사랑받고, 중국 사회에 기여하는 기업'. 삼성의 중국 본사인 중국삼성이 내세우고 있는 비전이다. 중국삼성은 2005년 "이제 한국 본사의 도움 없이 경영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며 중국에서 '제2의 삼성' 건설을 선언했다.

아예 중국 기업이 되겠다는 것이었다. 중국삼성은 생산.판매는 물론 상품기획.디자인.연구개발(R&D)까지 중국에서 해결한다. 이를 위해 중국에 생산법인(28개), 판매법인(30개), 각종 사무소(55개) 외에도 독자적인 연구개발을 위해 연구소 4개와 각 생산법인 부설 연구개발센터 15개를 설립했다. 5200여 명의 임직원 중 한국인은 13%가량인 700여 명에 불과하다.

중국삼성 고양진 상무는 "우리는 한국 기업이 아니라 중국 기업"이라며 "여기에서 벌어 이익이 나면 중국 당국에 세금 내고 고용도 창출하며, 사업 확대를 위해 중국에 계속 투자할 것"이라고 말했다.

SK도 2004년 중국에 지주회사를 설립했다. 이를 SK 측은 '중국 창업'이라고 부른다. 한국의 4대 그룹인 SK가 중국에서 하는 일은 별로 거창하지 않다. 광저우(廣州)에 플라스틱 공장, 선양(瀋陽)에 주유소, 상하이(上海)에 자동차 정비소를 차리는 일부터 했다. 가장 큰 사업 중 하나가 한국에선 퇴출 직전인 아스팔트 제조 및 납품 사업 정도다. 중국 SK의 김정수 대외합작부 총감(부장)은 "한국의 주력업종과는 별개로 중국 내수시장에 뿌리내릴 수 있는 업종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과 SK는 최근 '중국 기업'이 될 것임을 선포했지만 이들의 중국 연구는 오래됐다. 삼성은 한.중 수교 전인 1985년 홍콩과 베이징에 사무소를 두고 중국을 탐구하기 시작했고, SK는 91년부터 이런 연구를 했다.

SK는 별다른 사업을 하지 않던 2000년부터 한국의 '장학퀴즈'와 같은 고교생 대상 퀴즈 프로그램인 'SK좡위안방(狀元榜)'을 하며, 브랜드를 알렸다. 10여 년의 연구 끝에 이들은 중국을 단순히 생산가공 공장이나 수출시장으로 생각해선 안 된다는 결론을 얻었다. '중국에서 만들어 팔고, 중국에 기여하는 중국 독자 기업' 형태만이 중국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들의 현지화 전략은 최근 다국적 기업들의 전략 변화와도 맞물린다. 코닥의 경우 중국에 13억 달러를 들여 필름.현상약품.디지털카메라를 생산하는 공장을 세우고, 1만여 곳의 자체 점포망을 구축했다. 중국 토종기업과 같은 경영 전략을 세운 것이다.

다국적기업들은 2000년 이전만 해도 기업의 손과 발 격인 생산.판매 부문만 진출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이젠 경영과 개발을 맡는 두뇌 격인 지역본부가 진출하고 있다. 과거 생산 합작공장 형태에서 인수합병(M&A)을 통해 토종기업을 흡수하고 있다. 상무부 허가를 받은 다국적기업의 지역본부는 2005년 말 현재 70여 개, 지주회사는 300여 개에 이른다. 다국적기업들의 이 같은 현지 완결형 경영방식으로 중국의 산업 구조가 선진국형으로 점차 변하고 있다. 이것이 중국 경제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키고, 일자리를 늘려 내수시장을 왕창 키우고 있는 것이다.

현지에선 다국적기업들의 득세로 기업 간 양극화가 심화하고, 독점의 폐해가 생기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중국 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한 다국적기업들의 현지화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자리 잡았다.

이렇다 보니 중국 시장에선 중소기업들도 기술력이 뛰어나야 살아남을 수 있다. 햄.소시지 제조기기를 만드는 하이쿡(HI-COOK)의 복영호(46) 사장은 "중국이야말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로 승부를 내야 하는 시장"이라고 말했다. 그는 97년 '선진국 업체보다 싼 가격, 중국보다 월등한 품질'을 내세우면 중국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진출했다.

그러나 생각은 빗나갔다. 선진국 업체들이 모두 몰려 있는 터라 중국 구매기업의 안목이 높아져 웬만한 것엔 아예 눈길도 주지 않았다. 소음이 적고 튼튼한 기계 개발에 매달린 지 7년 만인 2004년 최고급 기계를 만든 후에야 제품을 팔 수 있었다.

복 사장은 "기술 수준이 낮으면 중국인들이 쉽게 복제해 30%도 안 되는 가격에 내놓는다"며 "시장이 제대로 형성되기까지 10년을 기다릴 각오를 해야 중국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중앙일보=양선희(팀장)·권혁주 기자(경제부문)

·한국무역협회=송창의 중국팀장, 이승신 무역연구소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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