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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 "국제정치서 「힘」의 상징"|미소 핵감축선언 이후 국내학계서 잇단 논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미소의 경쟁적 핵감축선언과 북한의 핵개발, 남한의 미군핵철수 등 핵을 둘러싼 국내외 정세의 격변이 가시화되면서 그동안 잠재해있던 학계의 핵논의도 표면화되고 있다.
국내에서의 핵논의는 전통적인 미국의 확인도 부인도 않는 NCND정책하에 금기시돼왔다. 그러나 이제 북한의 핵개발이 국제문제화하고, 미국이 남한내 핵철수를 공식 선언함에 따라 핵논의가 더 이상 유보될 수 없게됐다.
국내에서도 지금까지 정치·외교·군사연구학계에서 핵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나 연구자들간의 내부적 논의에 그쳐 왔었는데 최근 각종 학술지나 교양지에 관련 글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최근 주목되는 진보적 시각은 월간 『사회평론』11월호의 특집 「핵감축시대의 세계와 한반도」등에서 볼 수 있으며, 보다 학술적인 논의는 통일원에서 퍼낸 『통일문제연구』가을호에 실린 논문 「핵의 세계와 한반도 비핵화의 허와 실」등에서 물꼬가 터지고 있다.
논의조차 금기시 돼왔기 때문에 최근 표면화된 논의는 본격적 학술토론이라기보다는 핵의 본질에 대한 개설적 입문, 한반도주변 핵정치에 대한 해설서의 성격들이다. 진보적 연구자들의 글에서는 비핵지대화를 위한 평화운동 차원의 강한 주장이 강조되고 있음도 한 특성이다.
논의의 전제는 핵을 단순히 「가공할 파괴력의 무기」라는 차원에서 보지말고 「국제정치를 좌우하는 힘」으로 보자는 것이다.
핵은 「보유」자체만으로도 국제정치에서 「힘」을 인정받는 최대의 국익수단이며, 「보유할 가능성」(재처리시설보유)까지도 국제정치에서 저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북한의 경우는 후자의 예다.
김태우씨(국방연구원 선임연구원)는 이 같은 시각에서 핵을 둘러싼 현실정치의 냉혹함을 강조한다.
김씨는 계간 『통일문제연구』에 기고한 글에서 국제정치를 약육강식의 국익경쟁체제로 전제, 『핵확산의 불씨는 「힘이 통하는 세계」가 존속하는 한 꺼지지 않으며 힘센 나라들이 힘(핵)의 프리미엄을 포기하지 않는 한 「힘이 통하는 세계」도 소멸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핵무기의 피해범위가 초국가적이고, 전인류적이기에 어느 한나라가 국익을 위해 사용할 수 없어야 한다. 그려나 미국과 소련 등 강대국들은 핵을 자국 이기주의의 도구로 비축해 왔으며, 이는 냉정한 국제사회에서 당연하다는 것이다. 미소의 최근 핵군축선언 역시 「인류를 1백번 멸망시킬 수 있는 파괴력을 70번 분량으로 낮춘데 불과」하며, 그나마 자국의 이익이 침해받지 않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해석이다.
같은 맥락에서 세계핵금체제의 핵심인 「핵확산금지조약」(NPT)은 핵보유국의 독점논리로 비판된다. NPT는 핵이 없는 비핵국들의 핵개발을 금지하기위해 사찰을 강요하면서도 이미 핵을 보유한 강국들의 핵무기증강에 대해서는 전혀 규제를 하지 않는 이중성을 가진다. 더욱이 비핵국들에게 핵보유를 금지시키면서도 「핵으로부터의 보호」를 보장해주지 않는 것도 어부성설이다.
북한이 주장해온 비핵지대화(NFZ)라는 「선언」역시 강대국의 힘에 의해 실효성이 없는 것으로 비판된다. NFZ의 경우 핵의 제조·보유·반입·실험 등이 금지돼야 하는데 각 국별 이해와 핵보유국과의 관계 등으로 불가능하다.
김씨는 결론에서 이 같은 현실정치의 냉혹함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도 장기적 안목에서 핵기술과 핵에너지확보의 과제를 해결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주변 핵보유강국에 둘러싸인 채 그들의 「약속」과 「자제」에만 의존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외교마찰 없이 평화용 핵기술은 물론 막강한 잠재 핵군사력을 축적한 일본이 교훈적 예로 지적된다.
보다 진보적 시각에서는 「반핵·평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비핵지대화」를 주장한다. 또 미국의 핵감축주장을 핵독점과 세계지배의 신질서전략으로 비판한다.
즉 미국의 핵감축선언은 공산권의 몰락과 걸프전 이후 변화된 군사전략미라는 것이다. 이는 군사적 가치에 비해 유지비용이 과다한 전술핵을 철수하는 대신 이미 걸프전에서 확인된 재래식 무기의 성능과 전략, 해양핵무기 등으로 세계질서를 충분히 주도할 수 있다는 판단이며 이는 새로운 차원의 군비경쟁으로 비난받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진보적 주장들은 미국의 핵철수에서 나아가 「핵불사용」의 법적 보장을 요구하며, 이에 따른 한반도의 비핵지대화와 남북한 군축을 강조한다. 동시에 이를 위한 평화운동의 실천을 주장한다. <오병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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