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 걸쭉한 입담에 주한 외교사절들 빠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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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씨가 주한 외교 사절 앞에서 자신의 삶과 문학에 대해 강연하고 있다. [사진=김태성 기자]

소설가 황석영(63)은 문단에서 '황구라' 로 통한다. 워낙 입심이 센 까닭이다. 혹자는 '조선의 3대 구라' 어쩌고 하며 황석영을 그 셋 중에 넣는다. 그가 6일 진가(?)를 발휘했다. 한 시간 남짓 자신의 문학 인생을 털어놓으며 주한 외교 사절을 단박에 휘어잡은 것이다. '황구라' 를 잘 모르는 주한 외교관들도 그가 풀어놓는 이야기 보따리에 소리 내 웃었고, 진지한 표정으로 한국 작가의 문학 세계를 고민했다.

황 작가가 강연을 한 자리는 주한 외교 사절들과 한국 문인들이 한국 문학을 함께 토론하는 '서울문학회(Seoul Literary Society)'의 모임. 행사는 6일 오후 서울 성북동 스웨덴 대사관저에서 열렸다. 현재 프랑스 파리에 머물고 있는 작가는 이날 강연에 참석하기 위해 4일 밤 귀국했다.

"우리 말에 꽃샘 추위란 게 있는데, 이게 봄이 오는 게 샘이 나서 날씨가 변덕을 부리는 겁니다. 모든 것에는 일정 정도 장애가 있어야 좋은 소식도 올 수 있다는 세상 이치와 맞닿아 있지요. 추운 날씨에도 저를 보러 여기까지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대사님들 뵈러 파리에서 왔습니다."

작가는 18세 나이에 작가 활동을 시작했을 때부터 민주화운동 경력, 방북과 망명 생활을 거쳐 최근의 행보까지 자신의 파란만장한 삶을 한 시간에 압축해 소개했다. 외교 사절들이 한껏 웃으며 흥미로워 했던 대목은 역시 작가의 망명 생활이었다.

"1989년에 북한을 방문했지요. 그 일로 앞으로 10년 동안 우여곡절을 겪을 줄 알았다면 절대 안 갔을 겁니다. 맨 처음엔 중국에 있었는데 천안문 사태가 일어나는 거예요. 그래서 일본으로 갔더니 일본에서도 나가라고 합디다. 그래서 독일로 넘어갔지요. 아, 그랬더니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겁니다. 장벽이 무너지던 날, 아마도 거의 유일한 동양인으로서 나는 그 현장에 있었지요. 남들은 좋아서 울고불고하는데, 나는 혼자 눈물을 뚝뚝 흘렸습니다."

강연이 끝나자 토마스 스메탄카 주한 체코 대사가 "1920~30년대 서구 작가들이 소련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작가의 방북은 그와 비슷한 취지였느냐"고 묻자 작가는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앙드레 지드를 위시한 몇몇 서양 작가들이 당시 소련을 방문했던 건 사회주의를 체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때 한국 사회를 위해서 방북했습니다. 당시 한국 정부는 북한을 핑계로 민주화 운동을 탄압하고 있었습니다. 방북은 그것에 대한 항의의 행동이었습니다. 저는 지금 북한의 지식인들조차 북한 사회의 변화를 열렬히 바라고 있다고 믿습니다. 이에 따른 우리의 역할 또한 분명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날 행사엔 라르스 바리외 주한 스웨덴 대사를 비롯해 마시모 안드레아 주한 이탈리아 대사, 킴 루오토넨 주한 핀란드 대사, 토마스 스메탄카 주한 체코 대사 등 주한 외교 사절 10여 명과 윤지관 한국문학번역원장, 정희성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 박유하 세종대 교수 등이 참석했다.

글=손민호 기자<ploveson@joongang.co.kr>
사진=김태성 기자 <ts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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