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종군위안부 '망언'… 아베의 본심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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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종군위안부에 관한 미국 하원의 결의안은) 사실에 기반을 두고 있지 않다. 의결되더라도 내가 사죄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아베 신조(安倍晉三) 일본 총리가 종군위안부 문제에 관한 발언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관헌이 사람을 데려가는 협의(좁은 의미)의 강제성은 없었다"는 발언에 이어 5일 국회에서는 명확한 어조로 '소신'을 피력했다. 파문이 가라앉기보다는 더욱 확대될 기세다. 아베 총리가 이 같은 발언을 거듭하는 배경은 무엇일까. 우선 아베 총리의 과거 발언과 활동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정치인 아베="1993년 8월 4일의 고노 관방장관 담화는 당시에 만들어진 일.한 양국의 분위기 속에서 사실보다는 외교상의 문제를 우려한 것이다. 또 증언자 16명의 청취조사에 대한 아무런 뒷받침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군의 관여.관헌의 직접 가담이 있었다고 인정하고 발표한 것이란 사실이 판명됐다." (1997년 12월, 2선 의원 시절. '일본의 앞날과 역사교육을 생각하는 젊은 의원 모임' 기고문)

아베 총리는 정치 초년병 시절부터 고노 담화에 대해 극히 비판적인 입장을 갖고 있었다. 처음부터 사실관계에 대한 충분한 조사를 거쳤다기보다는 한국과의 외교관계를 배려해서 내놓는 바람에 역사적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다는 논리다.

이에 따라 "고노 담화 채택 이후 역사 교과서에 등장한 종군위안부 기술은 삭제해야 한다" "한국에 대해서는 사죄만 할 것이 아니라 해야 할 말은 확실히 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아베 총리는 이런 소신에 따른 역사교과서 개정 운동을 북한의 납치 문제와 함께 정치 활동의 양대 축으로 삼아 왔다. 이는 지금도 남아있는 소장파 의원 시절의 홈페이지(www.s-abe.or.jp/index2.htm)에서도 확인된다. 아베 의원은 97년 2월 80여 명의 의원을 규합해 '젊은 의원 모임'을 결성하고 사무국장을 맡았다. 이 모임은 한 달에 한차례 학자 등을 초청해 종군위안부 문제를 연구한 뒤 그해 연말에 보고서를 완성했다. 초청 강사 가운데는 위안부 문제 권위자인 요시미 요시아키 교수나 고노 담화의 당사자였던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전 관방장관 등도 포함돼 있었지만 대체로는 우파 인사가 주축이었다.

아베 총리를 포함한 모임 소속 의원들은 위안부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젊은 의원 모임'의 최대 테마는 위안부 모집 과정의 강제성 여부였다. 아베 총리가 최근 반복해 주장하는 '광의'와 '협의'의 강제성은 이 모임에서 이론화한 것이다. '노예 사냥'을 하듯 군인이나 관헌이 민가에 마구잡이로 쳐들어가 부녀자를 끌고 갔다는 공문서상의 기록은 그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 "협의의 강제성은 없었다"는 주장이다.

일본 관헌 출신 요시다 세이지(吉田淸治)가 80년대에 펴낸 참회록에서 그와 같은 위안부 사냥을 제주도에서 했다고 주장했으나 현지 조사에서 입증되지도 않았고 요시다 스스로 훗날'창작'을 시인했다는 것이다. 다만 경제적 상황에 의해, 혹은 민간업자의 꾐에 빠져 본의 아니게 위안부가 될 수밖에 없었던 '광의'의 강제성만 인정된다는 것이 아베 총리 등이 내린 결론이다.

이는 생존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증언과 상충하는 부분이다. 아베 총리를 포함한 '의원 모임'은 "뒷받침이 없다"는 이유로 생존자의 증언을 인정하지 않는다. '의원 모임'에서 강연하고 토론한 후지오카 노부카쓰(藤岡信勝) 전 도쿄대 교수는 이렇게 주장했다. "부모가 딸 몰래 업자에게 돈을 받고 데려 가는 것을 묵인한 경우에는 본인이 왜 끌려 가는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아베 총리도 같은 생각인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강제성 부인론자들은 대체로 이런 인식을 갖고 있다. 나아가 "돈을 벌기 위해 자발적으로 위안부가 되거나 처음부터 유곽 출신인 사람도 많았다"고 주장한다. 이 같은 경력에 비춰보면 아베 총리는 취임 전까지는 '고노 담화'의 수정론자였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정치인 아베의 역사관에서 비롯된 것이다.

◆총리 아베=하지만 아베 총리는 취임 초부터"내 임기 중에는 고노 담화를 계승할 것"이라고 거듭 밝히고 있다. 이는 한번 정해진 일본 정부의 입장을 번복하기가 어렵다는 현실적 이유와 함께 중대한 외교 문제로 비화할 가능성을 우려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의원 시절의 소신과 달리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보류한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최근 잇따른 발언의 배경은 무엇일까. 일차적으로는 미국 하원의 결의안 통과를 저지하기 위해 일본 정부의 입장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는 점이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최근 급락하고 있는 지지율 만회 전략으로도 분석할 수 있다. 취임 초반 지나치게 유연한 자세를 보이는 바람에 최대 지지층인 우파로부터도 최근 실망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한 정가 관측통은 "자신의 본래 색깔을 분명히 밝힘으로써 지지층을 안심시키려는 의도가 있다"고 분석했다. 아사히(朝日)신문은 최근 보도에서 이 같은 변화를 '아베류(流)의 복원'이란 말로 표현했다.

도쿄=예영준 특파원

◆고노 담화=일본 정부가 1993년 8월 고노 요헤이 당시 관방장관의 명의로 발표한 담화. "과거 위안부 이송에 일본군이 직.간접적으로 관여했고, 감언.강압 등 본인의 의사에 반하는 사례가 많았는데 관헌들이 직접 가담한 경우도 있었다. 피해자들에게 마음으로부터 사과와 반성을 전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공식적으로 종군 위안부들의 강제 연행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한 것으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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