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 단편 릴레이 편지] 메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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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오늘은 메주를 쑵니다. 여러날 춥다가 날이 다시 따뜻해졌기 때문입니다. 아침 일찍 콩을 씻어서 솥에 앉힙니다. 불리지 않은 콩이기에 물을 많이 붓고 장작불을 멥니다. 그리곤 아침을 먹습니다. 가방을 맨 셋째 아이가 감나무의 감처럼 마알간 얼굴을 하고 학교에 갑니다.

센 불로 때면 콩솥은 한시간쯤 후에 끓어 오릅니다. 그러면 불을 줄여서 이제 한 세시간쯤을 더 때줘야 합니다. 콩솥엔 커다란 고구마 대여섯개, 깨끗이 씻어서 속에 밀어 넣습니다. 콩이 완전히 물러서 콩물이 졸아붙을 때쯤이면 콩물이 배인 고구마도 완전히 익어서 달게 먹을 수 있겠지요.

이 고구마는 점심 대신인데 뜨거웁고 너무 물러서 손에 들고 먹을 수 없으므로 밥그릇에 하나씩 담아서 밥처럼 수저로 떼어 먹습니다. 물론 아이 몫은 남겨야지요. 싱건지를 곁들이지 못해서 조금 서운합니다. 고구마 점심 후엔 메주를 만듭니다. 커다란 비닐 부대에 콩을 넣고 밟아 으깨서 메주를 만들면서 아내와 서로 솜씨를 겨룹니다. 다 만들어진 메주를 방 윗목에 짚을 깔고 줄 맞춰 늘어 놓습니다. 어머니, 어릴적 내가 군입정 대신 그 메주를 떼 먹으면 꼭 쥐 뜯어먹은 것 같다며 어머닌 그 자리를 자꾸 눌러놓으셨지요.

박형진<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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