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께 바친 속죄의 「상감장농」|무기수 서영석씨 교정 작품전 대상수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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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21일부터 부산문화회관에서 열리는 전국교정작품전시회 대상수상작 「상감장농」은 교도소 담 벽을 사이에 두고 옥바라지 어머니와 무기수 아들의 지고지순한 구원의 기도로 이루어낸 작품으로 알려져 화제.
이 작품은 대상수상자인 무기수 서영석씨(44)가 어머니 김복순할머니(65·경기도 수원시 화서동)의 지극한 옥바라지로 새 삶을 찾아 부산교도소 이감 10여년 동안 익힌 목공기술이 예술의 경지에 이르러 마침내 전국교정작품전시회에서 영예의 대상을 차지한 것이다.
더욱이 이 작품은 어머니 김씨가 『아들이 교도소에서 뼈를 깍는 아픔으로 속죄하며 만든 작품을 남의 손에 넘길 수 없다』며 자신이 3백만원에 사들여 아들 서씨가 형기를 마치고 출소할 때까지 『자식 보듯 고이 간직하겠다』고 자청, 이미 팔려나간 상대.
그의 작품은 또 공교롭게도 형의 꾐에 빠졌던 금당사건의 무기수 박천웅씨(46)가 그려준 「물레방아 도는 산촌」를 소재로 판화형식으로 깎아 만든 것이어서 더욱 화제가 되고있다.
기법은 원재료인 나무판에 원화를 섬세하게 옮겨 그린 후 그림의 선을 따라 나무를 파고 그 파낸 자리에 다시 색깔이 다른 나무를 새겨 넣어 원화의 느낌을 그대로 살린 특이한 방법이다.
아들이 새 삶을 찾도록 하기까지 아들의 죄 값을 대신 치러내며 장인의 경지에 이르게 한 노모의 「창살 없는 감옥」생활은 76년10월부터 시작된다.
일찍 남편을 여의었으나 슬하에 아들 둘, 딸 하나의 3남매를 두고 다복하게 지내던 김 할머니는 큰아들 서씨가 그 해 2월 중순 친지 박성만씨(당시 41세·77년 살인죄로 사형집행)를 자신의 승용차로 살인사건현장까지 태워다 주었다가 공범으로 몰리게 되면서 아들과 함께 형극의 길을 걷게된 것이다.
서씨는 당시 박씨가 『가출했다가 돌아온 내연의 처를 태우고 의정부에 다녀오겠다』며 승용차를 빌러달라는 부탁을 받고 평소운전이 서툰 박씨를 염려, 대신 운전을 해준 것이 화근이 됐다.
서씨의 차를 탄 박씨는 의정부∼포천 간 국도 변에 차를 세우게 한 뒤 함께 데려간 내연의 처를 인근야산으로 끌고 가 흉기로 10여 군데나 찔러 숨지게 하고 달아났던 것.
이 때문에 서씨는 한동안 살인공범으로 몰려 쫓기던 나머지 경찰에 자수했으나 1, 2심에서 무기징역이 선고되자 상고를 포기, 기약 없는 복역생활에 들어간 것이다.
김 할머니는 아들 서씨가 무기징역이 확정되자 『흉악한 죄인이 된 자식의 영혼이나마 구제해야겠다』고 결심, 하루도 쉼 없이 아들을 면회, 『속죄하고 새 삶을 찾자』며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진 서씨의 번뇌를 달래주곤 했다.
독실한 크리스찬으로 교회장로이기도 한 김 할머니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꼭두새벽이면 일어나 목욕재계하고 『못난 어미가 눈을 감을 때까지 아들 대신 속죄하겠다』며 지극한 새벽기도로 일관한 것.
서씨가 미결감방에 있을 때엔 오전 9시면 어김없이 구치소로 달려가 맨 먼저 면회를 신청, 풀 이슬 같은 아들의 숨결을 맡아보는 것이 유일한 일과였다.
김 할머니는 초췌한 모습으로 변해 가는 아들 서씨를 면회할 때마다 가슴이 미어지듯 아팠으나 『결코 눈물을 보이는 어미가 되어서는 안되겠다』며 『죄 값을 치르고 다시 태어나라』고 격려해 왔다.
더구나 아내의 개가소식에 좌절감으로 몸부림치던 서씨도 어머니의 이 같은 격려에 힘입어 80년7월 부산교도소로 이감된 이후부터 목공기술을 익히면서 기독교에 귀의, 뒤늦게 나마 효의 길을 찾았다.
점차 신앙심이 깊어진 그는 스스로 모범을 보이며 재소자들을 교화하고 궂은일은 도맡아 하는 등 행형 성적이 우수하다고 교도관들은 입을 모은다. 【부산=강진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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